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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각

남편을 군에 보낸 아내 3

사랑스러운_ 2022. 9. 29. 00:51

(a.k.a. 아빠를 군에 보낸 아들)

아들은 곧 17개월이 되는 16개월 아기다. 한국 나이로 두 살.
평소 잘 안아프던 (날씨 탓도 있겠고 환경이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이 쪼꼬미가 콜록콜록 하더니 Dtap 4차를 맞고 접종열이 오르더니 꼬박 사흘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온갖 검사를 하고나서 그날 밤, 열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시작됐다. 엄마 껌딱지.... 괴성지르기......

아빠와 KTX역에서 헤어지며 나에게 안기자마자 아기는 아빠를 보고 있지만 물끄러미 멍하니 보았다. 얼굴은 굉장히 슬펐는데 말이다. 아빠는 열차에 탑승하여 창밖을 보며 연신 아들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아들은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입대 전까지 여러차례의 영상 통화로 아들을 불렀으나 아들은 외면했다. 자기가 하던 걸 그냥 계속 하며 놀았다. 아빠는 본 척 만 척 했다. 남편은 굉장히 속상해하며 입대했다.
낯설 정도로 아기는 나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따랐다. 낯설다는 표현은 내가 16개월동안 이 아이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양을 떨기도 하고, 엄청 반가워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 할머니껌딱지가 되어가는 걸 보며 한 편으론 몹시 편했고, 한 편으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그래도 내가 편하니 그래라 하고 뒀다.

갖은 검사를 한 그날 저녁, 정말 가고 싶었던 모임이 있어 나가기 위해 후다닥 밥도 먹이고 약도 먹였다. 7시30분 시작이었지만 7시40분에 나섰고, 8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8시30분, 친정아빠가 문자를 보내셨다. '너무 운다. 빨리 와라.' 가야겠다 생각했지만, 그치겠지 하고 귤까먹고 노닥거리며 안일하게 넘길 즈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바로 나왔다. 8시50분. 부리나케 달려오며 전화를 했더니, 울고 있다. (후에 들어보니 내목소리를 듣고난 후 바로 그치고 말없이 놀았다고 한다.) 9시10분 도착. 나를 보더니 반가워하긴커녕 물끄러미 보다가 시크하게 돌아선다. 무표정으로 외면했다. 말이 없었다. 흔한 쫑알거림이 없었다.

이날 이후, 아기는 내가 화장실을 가서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나를 찾고, 내가 안보일 땐 힘들어하며 소리를 질렀고, 계속해서 나를 옆에 두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조금만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는데, 좀 심하다. 귀가 예민한데 몹시 거슬리고 불쾌하기까지 시끄럽고 듣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기는 나를 닮았다. 나의 기질을 똑 닮았다. (얼굴 아빠복붙)
정말 보고싶고, 정말 섭섭하고, 정말 슬프고, 정말 속상한데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그리고 그냥 묻어둔다.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지낸다. 아기의 데면데면하는 지금의 태도엔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나를 너무나 닮아서 마음이 아린다. 그 내면에, 작은 마음에 얼마나 큰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속상하다. 아닌 척 하지만 얼마나 보고싶고, 얼마나 서운하고,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자기에게 조금 안정감이 있는 나와 친정엄마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데, 얼마나 큰 불안이 있으면 그럴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아니깐 더 속상하다. 지금껏 보인 아이의 낯선 모습의 이유를 찾아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이랬구나.. 생각할수록 미안하고 안쓰럽다. (보다보니 친정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아마 우리 셋은 같은 성향일 듯.)

마침 주말이라 남편과 한 시간의 통화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몹시 속상해한다. 아들이 자기를 외면해서 속상하다고 했었던 남편인데 이런 아들의 속내를 듣고 나니 속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에겐 굉장한 충격과 불안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늘 함께 있던, 함께 놀던 아빠의 한 달이 넘는 시간의 부재가 얼마나 큰 충격일까. 얼마나 보고싶고, 슬플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날 닮았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질 거란 것. 아직 경험치가 크지 않은 터라 짧게 끝나는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주의 보혈로 덮으시길, 싸매어 주시길, 회복시켜주시길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다. 그 작은 마음에 맺히게 된 두려움과 불안이 걷히고 맑고 밝게 빛나길.

며칠 지나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불안지수는 높을 것 같다. 한동안 나는 저녁 약속을 만들지 못하겠다. 껌딱지를 데리고 나가기도 뭣하니 시간이 좀 지날 때까지 잠자코 있자. 휴...


+ )
뱃속의 둘째는 첫째 재우면서 기도할 때 그 존재가 생각난다. 그래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그러다보니 둘째인 친구들이 왜 둘째만의 고유한 모습을 띄는지 해석이 되는 것 같다. 첫째를 가졌을 때의 엄마의 환경과 전혀 다르기에 둘째는 뱃속에서부터 첫째에 대한 질투가 있지 않는가 싶다. 둘째 짓(?)을 하기 위해 뱃속에서부터 이를 갈고 있을지도... 과학적 증명이 될런지 모르겠지만..ㅋㅋㅋㅋ 배도 쓰담쓰담 못하고, 말도 못걸어주고, 심지어 둘째가 나오면 첫째는 어떻게 하지 첫째 힘들어서 어쩌지 하는 첫째 생각만 가득하는 등 정서적으로 가득 채워주지 못하지만! 오빠가 배 위에서 콩콩하고, 엄마는 무거운 오빠를 하루에 여러 번 안아서 외부 압력과 위협을 많이 받겠지만! 그래도 둘째 넌 귀하단다. 사랑해 귀염둥이야.
아빠 목소리를 초반에 못 듣고 자라는건 나중에 아빠한테 보상받으렴.


쓰다가 뒤로가기 버튼 꾹 누르면서 졸아서 다 날아가서 빡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다시 작성. 앞으론 무조건 태블릿으로 작성한다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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