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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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클럽 창작과 비평 제1장 여름호] 네 번째 미션, 특집

사랑스러운_ 2020. 7. 12. 20:33

문학을 문화콘텐츠라고 치부하긴 가벼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커다란 범주로, 또 문학적 역사를 보았을 때 문학이 가지는 영향력이 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얼마나 소비하고 읽는지 알 수 없기에 얼마의 영향을 미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신 시대에 sns 바람을 타고 의미와 뜻을 둔 책이 소개되는 짜깁기 글이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아쉬운 것은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글이 드러나지 않아 진흙을 뒤져야 함이 아쉽다. 그런 숨은 글은 일종의 '빽'이 없는 것인지 '이단아'적 성향이 강한지는 알 수 없으나 독자로, 소시민으로는 아쉬움이 짙다.

문학은 역사 속에서 불의한 것과 싸우는 매체로, 불의한 편에 서는 매체로 지식인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이 곧게 있는 사람은 알아서 걸러서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이 없는 경우에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르지 못한 것도 전이되기 쉽다. 시대의 색을 반영한 혹은 반대하는 작가 개인의 감정만 드러나는 글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자신 안에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던져주는 멋진 작가가 있다. 주변에 단편적인 글이나 상황으로 감정이 부르르 반응하는 사람을 본다. 그렇기에 적어도 강요하는 글이 없길 바란다. 강제적 이데올로기 주입이 문학을 통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이야기했듯 물음을 던져주거나, 생각할 포인트를 제공하는 것이 문화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대가, 사회의 흐름이 좋은 소재가 되어 다양성을 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강제할 자격이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소리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를 쓰는 문학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조대한 평론가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통해 이야기 한다. 설정의 과잉과 반대한 세계관 vs. 익숙한 이야기 간의 상반된 소재를 가지고 현실과 허구가 겹쳐지는 기이한 소설인데, 현실세계의 침입과 가상세계의 위상 변화를 이야기한다. 시대가 묘해서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과 부합하는 가상세계를 살아가는 것만 같다. 새로운 소재로 등장한 것인데, 문학이 정도를 잘 지켜주면 좋겠다. 때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주제도 없고 다 읽고나면 이상한 것으로 인해 시간을 소비했다는 생각에 굉장히 무의미해지는 글을 만나게 된다. 쓰느라 고생은 하셨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나무를 해롭게 하는 종이 쓰레기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말한다 하더라도 생각 없이 지껄여놓은 글이 난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샛별 평론가의 글 속에 담긴 김유담 작가의 '탬버린'이라는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굉장히 고전적인 소재로 지방러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 고전을 그대로 살고 있는 시대를 그려낸다. 지방이라는 소재가 가난, 무능력, 비전문직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지방인으로서 너무 극으로 치닫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면서도 적절하게 공감이 된다. 

또한, 강화길의 소설을 통해서 생각해봄직한 질문을 던진다. 여성의 인권이 강조될 수록 극단적인 페미니즘으로 치닫는 경우를 볼 때면 같은 여성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는 표현이 와 닿는다. 특히, 돌봄과 권력의 적절하고도(늘, 적절한 것이 어렵지.) 서로 상호 간 도움을 주고받는 구조에 대한 논평이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그래, 이게 공동체지. 이게 우리가 지향할 것이지. 서로 보듬는 것, 서로 신뢰하며 기댈 나무가 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기대는 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더 진한 여운이 남으며 더 생각을 펼쳐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역적-가족적-교육적 불평등이 서로를 강화하는 세계에서 존재의 가치는 그 자체로 의심에 부쳐진다. '기본소득'을 비롯한 새로운 분배 시스템의 원리가 '존재 자체의 몫'을 명명하는 방식으로 상상되고 있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도움'도 '보상'도 아닌 분배에 대한 이 존재론적 발상이 "정의로서의 평등"을 앞당기는 단초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돌보는 권력'은 '~보다 우위에 있는 힘'(power over)이 아니라 '~를 하는 힘'(power to)으로서의 권력 개념, 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힘으로서의 권력 개념(power as empowerment), 미래지향성과 재생산성 그리고 이타성을 함축하는 권력 개념에 부합한다.

'돌봄'과 '권력'은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고, 그럴 때 정치는 불평등을 심화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아귀다툼이 아니라 양육의 주체인 모든 시민, 공동체, 국가의 평등하고 다양한 미래에 대한 소원이자 그 소원을 이루려는 끝없는 경주를 가리킨다는 것을 '집단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는 한 시민단체의 사례가 넉넉히 입증해주고 있다.

- 신샛별 평론가, '불평등 서사의 정치적 효능감, 그리고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 中 


창작과 비평 2020 여름호_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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