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클럽 창작과 비평 제1장 여름호] 두 번째 미션, 시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클럽 창작과 비평 제1장 여름호] 두 번째 미션, 시

사랑스러운_ 2020. 6. 21. 22:06

여름이 되자 이웃의 누군가 우리 집 마당 한 귀퉁이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이용해도 되겠냐고
그러라고 했더니
다음 날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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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주인은 나인데
여름의 주인은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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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얼마나 긴지
바다가 얼마나 사나운지

아무도 없는 겨울 바다를
나 혼자 보고 있다

- 강성은, '혼자 사는 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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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거리라는 것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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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한 사람만큼의 자리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게 꼭
누군가의 빈자리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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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형, '나는 이제 예전만큼 자주 걷지 않지만 방 안에서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中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에 이희형 작가의 말처럼 사람 간의 거리가 생겨났다. 좋든 싫든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생각보다 삭막한 경험을 생각지도 못한 때에 경험하게 된 인간은 약 5개월이 지나니 익숙하게 살고 있다. 불편했던 사이는 오히려 거리두기로 인해 마음이 편해졌고, 친밀했던 사이라 생각했던 사이는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 상황과는 달리, 강성은 작가의 '혼자 사는 집'은 북적북적하는 풍경이다. 그리고 북적거림이 성가셨는데, 사람이 없는 겨울바다가 대조된다.

시 안의 화자는 본인은 좋은 것을 알지도 못했고, 누리지도 못했고, 함께 향유하는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뜻밖의 사람들이 나타나 이용 여부를 묻게 되었고, 함께 향유하는 것이 맞다 싶어 함께 누리자 하였으나 본거지를 침입당하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그것도 그런 것이, 한 번 허용하니 모두가 그것을 허용하길 원하고 안 해주면 안 되는 것만 같아서 그러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한 자아가 점령당해버렸다. 그렇지만 화자는 지금껏 본인이 누리고 점령한 것을 다시 되짚어본다.

한 철이 지나니 아무도 찾지 않아서 당황한다. 아무도 없어 길고 사납게만 느껴지는 외로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여름철 북적하던 사람이 사나운 것이 아니라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 더 사납게 느껴진다고 한다. 혼자인 것보다 조금 불편하지만 함께 하는 것을 낫게 여긴다.

팬데믹이 언제 끝이 날런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 때론 곁에 있어서 더 불편하기도 했고, 좀 떨어지고 싶은 관계도 있었을 것이며, 자연의 입장에서는 그만 괴롭힘 당하고 싶었을 것이다. 모두의 입장을 다 들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내 입장을 넘어서서 내 주변을 돌아보며 그들에게 잔잔한 그리움을 건네며 인간됨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명철 작가의 '꽃은, 고양이는,' 이라는 시만 봐도 그렇다. 너무나 예쁘고 여린 것이지만 가까이하면 다치는 것들. 지키고 살핀다는 것은 내 소유로 차지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서 포기도 필요하듯.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내려놓아야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음을 '여름방학'이라는 시를 통해 박은영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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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날 수 있는 건 날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제 속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날갯짓이라면

모든 결심은 비상하다

- 박은영, '여름방학' 中


분명 12명의 작가가 쓴 시를 읽었는데, 한 결로 연결이 된다. 우리 시대에 사람을 소중히 여길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원망이나 미움보다 인간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시의 주인공처럼 따스함을 가진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시기가 지나면 이전의 냉랭함보단 더 따뜻한 시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소원해본다.

창작과 비평 2020 여름호 _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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