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클럽 창작과 비평 제1장 여름호] 세 번째 미션, 소설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클럽 창작과 비평 제1장 여름호] 세 번째 미션, 소설

사랑스러운_ 2020. 7. 2. 14:51

누군가가 소설이 무엇이라 묻는다면 이웃의 뭉클한 이야기라 하고 싶다.

이번 여름호의 이웃의 일상은 여러가지가 나왔으나 괜시리 부모님과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코

끝을 찡하게 했다. 나이가 들었는지, 결혼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부모님을 떠올리면 지난 시간의 부모님보다 한층 주름선이 뚜렷하고 자신감을 잃은 느낌이라 속상하고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감정을 컨트롤하기 힘들다. 우리네의 이웃이 부모님과의 삶을 다룬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찬찬히 담고 있는 소설을 모두 소개해보려 한다. 


반희는 이 순간을 영원히 움켜쥐려는 듯 주먹을 꼭 쥐었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스스로에게 일러주려는 듯 작게 소리 내어 말했다.
채운씨가 오고 있어. 채운씨가 와.


외가가 아니라 내 본가.
알았어. 엄마 본가.
당분간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실버들 천만사'에서 권여선 작가는 딸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여 마음을 찡하게 한다.

또 엄마, 여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친정이나 외가가 아닌 본가로만 느껴도 크게 마음이 수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문장이 참 명쾌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겠으나 말이다. 신분의 변화(이혼녀)는 결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만한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이런 말이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와 딸은 그 주변인 모두를 ~씨.라고 야자타임을 빙자한 존중타임을 가진다. 이때서야 동등의 위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못다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평등함 속에서만 나오는 듯 진솔하다. 그리고 모두가 지금껏 하지 않았던 (혹은 찾아보지 않았던) 속의 마음을 이야기로 불어낸다고해도 과언이 아닌듯하다. 한 번 즈음 해보고 싶은 도전적 과제이기도 하다. 낯설지만 신선한 즐거움을 가져다줄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답글에서 세영은 남성 혐오자였고 세영의 친구는 아무데서나 몸을 굴리는 부주의랴 날라리였으며 젠틀한 남사친은 동성애자거나 페티시즘 취향의 변태거나 소심한 병띤이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답글들이 아무 일 없었던 거 맞느냐고 조롱했다.


뭐 어때? 어차피 네 얘기라는 거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알잖아.


명학수 작가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는 타인의 아픔과 문제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친구가 경험한 걸 불특정다수가 보는 SNS에 올리고서도 크게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과 그 댓글이 말해준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 단편적인 것으로 너무 일반화 시키는 것.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 개인의 감정보다 끌리는 이슈를 즐기는 SNS세대. 혹은, 이것이 중시되는 사회의 풍조. 내가 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끝. 내가 다 불편하고 찝찝한데, 소설은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의 끝을 보여주듯 마무리된다.

반면에 윤성희 작가의 '블랙홀'에서는 타인에게 고통을 수반하게한 마음이 결국 계속 긴 삶에 남아 있으면서 여전히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어두운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커다란 구멍을 두려워하고 있다.

'블랙홀'의 주인공들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의 주인공을 만나면 꿀밤 백 대를 때려줄 것만 같다. 젊은날, 인생 그렇게 친구들 어려운 마음 던져주며 살지말고 이웃을 돌아보며 사랑하며 살라고. 그렇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말할 것만 같다. 결국, 타인을 힘들게 했던 그 기억은 수없이 내 마음에 번민을 가져다주며 떠올릴수록 고통 속을 걷게 할 것이라고.

이주혜 작가의 '자두 도둑'은 구성이 신선하다. 다양한 주인공의 자서전적 전개가 있기도 한 이 소설은 조금 어수선한 구성이지만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는 그리 산발적이진 않아서 읽기에 큰 불편함이 있진 않았다.

주인공의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 몰아갔고 깊은 인간적 욕구와 본능의 반응이라 생각하는데, 사회적 주변인의 반응이 주인공을 더욱 힘든 삶으로 이끈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부모님의 희생과 자식의 도리 사이에서 서로를 향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단순한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여러 마음이 오간다. 읽으면서 8월이 늘 걱정인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하면서,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불평을 일삼았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참 어렵다. 자신을 망가뜨리고 죽여서까지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타인에게 좋은 사람인 것보다 자신의 양심에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잠시, 한 순간, 시작 뿐 아니라 쭉, 꾸준히, 계속, 끝까지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적어도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반응을 하는 삶이길 기대해본다. 그 전에 나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길.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늘 떠올리는 선택이길.

 

창작과 비평 2020 여름호 _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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