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사랑스러운_ 2019. 5. 18. 18:15

모모(모하메드)의 세 살 즈음의 기억부터 동행하는 로자 아줌마와의 기억에 대한 회고의 형식으로 칠 층 높이의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로자 아줌마가 살아온 긴 생의 여정을 모모 앞에 놓여진 생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 라는 물음과 함께 스스사삭 읽어 내려갔다. 생이 주는 즐거움과 유익도 아니고 부정의 의미가 더 많이 스며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돋우는 모습 속에서 간간히 삶의 주는 의미를 담고 있긴 하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사실 소설기 최은영의 서평이 없었다면 그냥 저냥으로 그친 소설에 불과했을 것이다. 다시 읽기에 큰 흥미를 가지지 않는 나로서는 그렇다.

모모는 본인이 생각치 않은, 상상치 않은 상황에서 따뜻한 관심(사랑)이 주어질 때 희망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때에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희망이라는 걸 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물론 현재도 그 비전은 유효하나 삶에서 꿋꿋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이 버거울 따름이다. 희망은 삶을 지탱하는 무언가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은 그냥,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살아가게 하고, 꿈꾸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사랑을 받게 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이 칠 층짜리 엘베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 본인의 입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진 않으나 본인들은 모르지만 적어도 서로가 희망의 각 요소들이 되고 있다. 그래서 도움이 되고,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 세상에서 큰 비중 없이, 아니 천대받는 자들이지만 서로가 있어서 생을 이어갈 수 있는 바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모든 걸 갖춘 것 같으나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그 필요를 느끼지 않는) 지금과 비교하니 조금은 무거워진다. 더군다나 모모는 가끔 상상 속에서 인물이나 동물을 등장시키는데 그것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는 것 같다. 상상 속에 원하는 대상을 불러내어 자신 앞에 놓인 상황을 정리하는 모모다.
서로가 있어서 삶을 지탱하는 이들은 생이 사그라드는 것도 함께 한다. 가장 두려울 때 평안을 찾기 위해 로자 아줌마가 가는 지하의 유태인 둥지에서 죽음이 두려운 아줌마의 시간을 함께 하고 죽음 이후의 3주의 시간도 함께 해준다. 그 두려움의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보내는 것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할 무렵, 다른 희망을 소개한 나딘 아줌마에게로 연결이 된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이지만, 아마 그곳에서 사랑을 맛보며 살아갈 모모를 떠올리니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마지막 챕에서 이야기하듯,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살 수 있다. 아마도 사랑과 사람, 삶은 이어지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사랑없이 살 수는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나보다. 이것의 결핍이 두려워서 죽은 로자 아줌마 옆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주변을 돌아보면 사랑이 가져다주는 희망이 없이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보인다. 아이들만 보아도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은 관심, 사랑이다. 그것이 이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었다. 매몰차게 거절할 때도 있고, 봐주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응원하고 듬뿍 관심을 줄 때 아이들은 변했다. 물론 회기 능력이 뛰어나서 금방 돌아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창조주는 각자 앞에 놓여있는 삶을 살아가기 버거운 날들도 있지만 그걸 지탱하는 주변인이 있어서 끝까지 살아가도록 하셨다. 아무도 없는 것과 같을 때 무너진다. 이 무너짐은 처절하게 다가온다. 생은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내게 주어진 작은 자들이 삶의 끝자락에 있을 때, 아무도 생각나지 않을 때, 이들에게 한낱 희망이 되는 존재여야겠다. 그래서 삶을 놓지 않도록 해야겠다. 바보라서 그 호소를 못듣고 못알아차리는 경우가 없기를,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따뜻한 자로 남길!


+
46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76 로자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라나. 특히 암사자의 세계가 그러하단다.
178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유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256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311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소설가 최은영의 서평 中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이 한 권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멋지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망상에 빠지고 세상 제일 우스운 꼴을 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 세상이 무가치하다고 판단내린 두 사람이 서로에게는 세상 누구보다도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사람이라는 존재는 세상의 판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 추함과 아름다움까지도. ...... 이 소설에서 비참한 것은 세계이지 인간은 아니다. 인간은 병들고, 생명이 다하고,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때조차도 사랑 안에서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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