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연애도 계약이다 - 박수빈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연애도 계약이다 - 박수빈

사랑스러운_ 2019. 5. 4. 13:28


최근 읽은 연애의 기억’(줄리언 반스)은 대학을 다니는 열아홉 남자 폴이 대학생 딸 둘을 키운 마흔 일곱 여자 수잔과의 만남과 사랑을 회자하는 소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휘감기는 것. 이런 것이다. 다른 걸리는 부분을 넘어서는 위험천만한 행위. 그렇지만 제어되지 않는. 그래서 그런지 참 많은 소설과 영화의 뜨끈한 주제가 된다.

모두, 아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런 위험천만한 사랑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나의 기억은 그렇다. 나에게 그것은 이러하다. 감행했을 때의 희열? 그 순간의 짜릿함?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 마치 마약과 같아서 어느 시점이 되면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안달난다. 그 안달, 위험하다. 결국 깊은 연애로 이어지지 않더라. 한낱 즐거움으로 끝이다. 연애로 이어지면 고민하고 생각해야하는 것이 많아서 그렇다.

그렇다보니 참 많은 친구들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복잡하고 얽매이는 것이 그 때는 싫었나보다. 풍덩 빠지는 그 기분은 좋으나 연속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로 인해 나의 시간에 내 스스로 무심해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사랑에만 휩쓸려 있는 연애가 전부가 아니기에, 연애는 복잡하기에 나를 내던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 정리해본다. 요즘은 그렇지 않으니 다행이라 해두고 싶기도.

 

계약이라는 단어가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하고, 재미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연애의 계약조금은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간다. 주 직업이 변호사인 저자는 사랑을 유지하고 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연애라고 생각하기에, 연애에는 노력과 신뢰가 필요하고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된 교섭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며 계약과 연결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론, 이따금씩 나오는 법률 용어는 skip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들게 하고, 굳이 이렇게 어렵게 연애해야하나 라는 단순한 볼맨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는 썸으로 끝난 경우가 많다. 끝까지 썸으로 남고 싶어서 그랬기도 했었으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후의 시간에 속박되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지고 뻘쭘(?)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생각에 경종을 울리게 한다. 썸에는 책임과 없고 의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다.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무책임하게 아무런 마음이 아니었던 것처럼 허무하게 만들어버린 시간이 있다. 그 쫄깃한 감정과 기분을 마약같이 끊어내지 못하고 매번의 썸이 그런 식으로 종결하며 희희낙락하게 있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에 나의 지난 시간을 깊이 반성한다. 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요즘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을 위로해본다.

연애는 소유가 아니다. 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표현의 방법일 뿐이지 완전 내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통용되는 것이 내게 썸을 끝내고 연애로 진입하는데 있어서 큰 장벽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연인이란 나의 삶과 마음에 상대가 머물 방을 내거 주는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온전히 그 사람을 소유할 수는 없는 탓에 소유권자가 아닌 임차인 또는 저당권자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p58)고 말한다. 소유할 수 없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를 너무 속박한다. 이는 결국 데이트 폭력, 그루밍 폭력, 리벤지동영상유포 등의 범죄로 이어진다. 이런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을 때의 연애를 돌아보면 나도 상해를 입을 만한 폭력은 당하지 않았으나 나를 구속하고 친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부분은 데이트 폭력의 한 범주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피하고 도망 다니면서도 만나면 좋은 것 그 하나로 인해 쉽게 수용하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지만 결국 다행히 적정선에서 헤어짐이라는 마침표를 찍고 끝낼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물론, 헤어짐의 과정도 순탄하진 않았으나)

썸만 즐겼던 때도 있었지만 그전에는 사귐에 있어서 명확하게 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뭔가 모호함이 싫고 불쾌하고 안정감을 가져다주지 못해서 참 여러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를 썼었다. 그러다가 썸으로 끝나는 것에 즐거움을 누리던 때는 그렇게 관계를 규명 짓는 것이 불편했었다. 그냥 마음만 알면 되는 거지 중고등학생도 안니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라고 하며 내 마음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상대를 힘들게 했었다는 사실을 지금 생각하고 반성한다. 개인 자유이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덜 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의사 표현과 합의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계약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게 하는 것이면, 이 책의 부제처럼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라는 말이 성립하게 하니 모든 관계에서 섣부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계약에 한 표를 던진다. 이것은 불편하고 속박됨이 아니라 서로 안에서 더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또 존중하는 태도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겠지.

연애가 피곤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은 아마도 내 모습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썸의 단계가 지나고 나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내 모습에 스스로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아닐까. 상대방의 가장 친한 친구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꾸밈이 없는 마음일 것이다. 연애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그렇지 않던가. 그런데 이것이 많이 지나칠수록, 혹은 이를 강요하는 사람을 만날수록 피곤함을 가지고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다. 상대방의 기호에 맞추려는 애씀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지 않은가.

결국 사랑이든 연애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상도덕, 예의에서부터 열린다.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는 이것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 사랑이든 연애든 두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같은 마음이 아닌 채로 어떤 이유에서든 날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를 인내하고 이해하는 마음. 그 마음이 있을 때 서로가 있어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안 되어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를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며 연애도 계약하듯 시작해봤으면 좋겠다고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찬찬히 읽으며 나의 지난 연애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연애하기 위해 계약하라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연애로 갈기갈기 찢기지 말고 그만큼 바르고 깨끗한 연애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시한 것일 뿐이다.

 

+ 조각 모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노력과 무관할지 몰라도 그 사랑을 유지하고, 상대방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상대방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분명 노력이 필요하다.

연애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다.

계약에서의 자유에는 일정 정도 한계가 존재하고, 서로가 그 자유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협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때 협의는 상대방도 자유를 가진 사람이라는 동등함을 전제로 이루어져야한다.

연애는 한쪽이 다른 한쪽의 사랑을 받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쌍무계약이다. 내가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할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연애는 끊임없는 교섭의 과정이다.

세상이 아무리 성적으로 개방되고 그 무게가 가벼워졌다 하더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으며, 어느 누구도 타인을 때릴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연애의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식어서 헤어지자고 하면 더는 연애가 아니게 된다. 혼자 하는 연애란 없다.

 

I lik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 (브릿지 존슨의 일기 中)


창비 블로그에서는 이 책을 홍보하며 이렇게 계약서를 하나 투척한다.  클릭→ (행복한 연애를 위한 표준 계약서)


본 서평은 창비의 따스한 손길에 의해 가제본 도서를 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