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자기만의 침묵 - 엘링 카게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자기만의 침묵 - 엘링 카게

사랑스러운_ 2019. 3. 17. 22:23

사실 제목보다 소제목? 부제에 더 끌렸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향과 외향의 에너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그리고 필요한 사람이다. 둘 다 적절하게 채워져야하는데 외향의 에너지는 내가 굳이 챙기지 않아도 잘 나눠주고 받기도 하지만 내향의 에너지는 내가 시간을 내지 않으면 받을 수도, 나눠줄 수도 없을 만큼 차단된다. 그래서 꼭꼭 그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를 쓰지만 지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터라 쓰러지듯 잠을 자버린다. (물론 잠자는 것도 에너지를 비축하는 꼭 필요한 시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삶이 반복되다보니 더 빨리 지치고 뭔가 바쁘지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자주 들어 시간을 써도 기분이 나쁘다.
이 책의 부제는 '소음의 시대와 조용한 행복'.
내게 그 소소한 행복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글 읽기)

엘링 카게는 노르웨이의 탐험가이자 변호사, CEO, 미술품 수집가, 세 아이의 아빠다. 시끌시끌한 삶이기도 할 테고, 사색을 즐기는 삶이기도 할 테다. 이런 그가 삶에는 꼭 침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의를 들은 청자들의 질문으로 서른 세 번의 생각과 글이 모였다.

질문1. 침묵이 뭐죠?
질문2. 침묵은 어디 있죠?
질문3. 다른 때도 아니고 왜 지금 더 침묵이 중요하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전달하진 않으나 서른 세 개의 트랙은 내게 다양한 생각을 폭넓게 하면서 나만의 고요한 시간에 대한 당위성과 함께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인정을 통해 안정감을 얻었다. 곰곰히 생각하며, 오늘 설교와도 이어지는 것이 꽤나 있어서 더 풍성해졌다.
또, 아리스토텔레스, 비트켄슈타인, 존 케이지, 뭉크, 올리버 색스 등의 명사들의 삶에서 침묵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구성된 책이다. ('철학, 음악, 문학, 미술을 망라하는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구했던 침묵의 기술을 통해 건강한 삶을 지탱해 주는 조용한 행복의 비밀을 만나 본다.' 라고 출판사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침묵은 여유다.

이 책의 뒷날개를 덮으며 침묵에 대한 나만의 사전적 정의를 이렇게 내리게 되었다. 입을 열지 않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해서 고요함도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과의 단절도 아니다.
떠들어대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참새 시절에 침묵을 체벌로 경험하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커다란 열린 세상을 살아가던 어린 시절 혹은 어린 청년 시절엔 침묵하는 것이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경험 등 침묵이라는 단어 앞에 왠지 모를 부정적인 느낌적인 느낌. 이런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침묵을 떠올릴 때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에 이르게 한다. 이어서 존재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기계적으로 무얼 자꾸 하려고하고 수단으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체적이지 못하게 되는 거겠지.
침묵은 또다른 생각과 상황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단절보다는 유기적으로 묶어준다. 침묵의 시간이 없다면 각개 다른 것일텐데 그 시간을 통해 모든 것은 거미줄 같은 관계망 안에 들어오게 된다.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한다. 더할 나위 없이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침묵은 늘 우리와 함께 있으나, 찾지 않고 구석에 박아둔다. 그래서 오해가 싹트고 관계가 깨진다. 즉각적인 반응이 있어야만 하는 시대에 잠깐의 시간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조금 더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급하게 하고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 아니 분 단위로 바쁘게 틈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사치가 맞다. 이것이 진짜 사치라면 누구든 값없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품이다. 그런데 이 명품의 수요는 적다. 최고인데 값을 안쳐준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중요도와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인해 헐값이다. 그래도 가져가지 않는다.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침묵은 고요한 장소가 필수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침묵을 방해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의외의 순간에 침묵이 깨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너무나 한적한 공간에 빵빵하게 클래식이 흘러나오지만 여기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쓸데없이 책의 맞춤법이라든지 내 갈라진 머리 끝이라든지 이런 허무한 상황으로 침묵이 깨진다. 그렇다면 침묵은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다.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침묵을 따분하게, 배타제이게, 불편을 도모하는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침묵은 친구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강력한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내 인생의 길에서 잠시 스탑하고 내 인생을 사랑하고 더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세상을 볼 때에 고급스러운 호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 말한다.

무의미한 것, 비본질적인 것, 바쁨에 쫓기듯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한다. 주어진 시간을 잘 쓰기 위해 내면을 돌보는 것. 나는 이걸 하나님과 나의 찐한 소통의 시간으로 생각한다. 늘 묻고 귀 기울이는 피정의 시간이 매순간 나를 다시 역동적인 삶의 자리에서 뜻을 가지고 살게 한다. 아마 Quite Time, 큐티도 이런 맥락 안에 있는 것일테지.

나에게 침묵의 시간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있음을 아는 시간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더 확실하게 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이 없었으면 나는 목적 없는 삶을 살 것이며 방향 잃고 헤매는 삶이었을 것이다.
침묵은 장소와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디든 마련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운전에 심취해있을 때, 샤워할 때, 볼일 볼 때, 양치질 할 때 떠오른다. 잠잠한 그 시간이 나를 가득 채운다. 물론 여럿이 브레인스토밍도 필요하지만 그걸 위해선 개인의 침묵이 무조건 필수.
앞서 이야기했듯 침묵은 고요함이 아니다. 청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적 이미지로 접근해야한다. 그 잠시 잠깐의 침묵의 시간, 그 시간이 여유다. 여유 없이 나를 살필 수 없다. 나를 살피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도 품을 수 없다. 내 안에 침묵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목적을 공고히 하며, 내게 부탁하신 이웃과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되길.
여유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또 일이 된다. 그 시간마저도 체킹받게 된다. 수단으로 전락한다. 시간을 가지는 것은 부유함을 가지는 것과 같다.

내게도 평안이 깃들길.


+
73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인생은 길다. 단, 우리가 아주 자주 우리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나아지는 경우에만.
91 침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부유하게 살 기회를 주는 격차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92 침묵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위한 사치품이다.
99 침묵은 잠시 멈춤으로써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137 당신이 경험하는 침묵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침묵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침묵이 있다.


본 서평은 민음사의 따스한 손길에 의해 도서를 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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