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눈 - 막상스 페르민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눈 - 막상스 페르민

사랑스러운_ 2019. 3. 9. 21:32

눈처럼 깨끗한 글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어떠할런지 모르겠으나 글의 구성이 정말 아름답다. 하이쿠로 시작하여 산문으로 이어지는 구성도, 54개의 단락으로 이어지는 구성도, 크게 세 챕터로 나눠진 구성도, 내용과 딱! 맞아떨어진다. 구성 뿐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다움으로 똘똘 묶여있는 것만 같다. 순수한 눈과 같다. 쓰여진 많은 문장이 주인공 유코가 이야기 하는 그 눈 - 시이고 서예이고 회화이며 춤이고 음악 - 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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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이라는 완전수에 맞춰 글을 쓰는 유코 아키타는 열일곱 글자로 쓰여진 하이쿠를 쓰는 날 것?^^ 그대로의 어린 시인이다. 승려인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지만 곧은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 심지어 북해도에서는 새로울 거라곤 하나도 없는 익숙하고 지겨운 눈을 좋아라하는 아들이 못마땅 하지만 국정 시인의 등장으로 아버지는 아들이 시를 쓰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대중적인 것을 보태길 바라지만 아들은 꼿꼿하다. 누구나 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고 늘 그래왔듯이 겨울의 하얀 눈과 함께 한다.
또다시 찾아온 궁정 시인의 제안에도 탐탁찮았지만 그와 함께 온 후견인 여인에게 매료되어 궁정 시인의 제안을 수용한다. 길을 떠나 남쪽으로 가던 유코는 산 속에서 얼음에 갇힌 여인에 매료된다.
배움의 장소에 다다랗고 이윽고 만난 색의 대가 소세키 선생은 맹인이다. 맹인인 선생에게 무얼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유코에게 선생의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집사 호로시에게 듣게 되었고, 그 이야기의 여주인공 네에주가 북에서 남으로 오던 길에 만난 얼음 속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늙어 버린 소세키 선생과 함께 젊은 네에주에게 갔고, 젊은 시절과 지금 사이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 네에주가 묻힌 그곳에서 소세키 선생은 생을 마감한다. 그런데 유코는 모든 것을 상실한 것만 같은 마음이다. 얼음 속에 있던 그 여인, 네에주를 많이 사랑했나보다. 자신의 색을 잃고 시를 쓰던 그에게 배움의 길을 나서게 한 궁정 시인의 후견인, 소이케 선생과 네에주의 사랑스러운 딸 봄눈송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눈으로 지어진 줄 위에서 서로 사랑한다.


작가 막상스 페르민은 주인공 유코 아키타의 순수함과 열정을 닮았다. 그렇기에 이런 맑은 글이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북해도는 눈이 지겨운 곳인데 그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너무나 평범한 것에 의미를 씌워 내는 프랑스인 작가는 그렇기에 작가가 아닐까 싶다.
특히,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삶 안으로 가지고 올 만큼 맑디 맑은 순수한 유코에게 투영된 작고 영롱한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함은 싫고 또 싫은 것을 해야만 하기에 억지로 하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하나님이 맡기신 숙제라 생각했고, 하나님이 내게 사랑하는 마음을 더하셨기에 사랑했고, 사랑하기에 용납하고 인내할 수 있었던 상황들을 요근래 내 안에 사랑없음으로 인해 아니꼽게 바라보게 되어 멘붕? 아니 파괴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땅으로 쑤욱 꺼지고 있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너무 너무 정말 많이 힘든데, 방법이 없다. 사실 방법은 있지. 사랑하는 것.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발동했고, 인내가 필요한 상황인데 더이상의 인내보다는 포기가 낫다고 생각하니 사랑하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 내 마음에서 제해버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유코의 순수함이 더욱 더 부러웠다. 사랑 때문에 멈추고 시작하는 유코의 순수함. 그리고 소세키 선생의 순수함이 좋았다. 그 덕에 흠뻑 빠져 꼭꼭 씹어가며 읽을 수 있었다.
또, 소세키 선생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바라봐주는 것이었다. 위험한 곡예사의 삶을 허용할 때 소세키는 분명 힘들었을터. 그러나 네에주의 행복과 아름다움이 공기 같아서 매일 감사한 그의 고백은 따뜻하다. 걱정과는 무관한 행복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사랑할 때만 알게 되는, 경험할 수 있는 그것이 있다. 그것을 말로도 글로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 그런 게 있다. 나에게 지금 그 기쁨과 감동은 없다. 너무나 기계적이다. 기계적인, 인위적인 마음은 나를 생기 잃은 고목나무로 만든다. 무엇을 하든 감동이 없다. 의미가 사라졌다. 힘이 빠진다.

다시 사랑하자.
먼저 그 사랑을 다시 취하자.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내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허락하시고 아낌없이 조건 없이 주시고 또 주시는 사랑의 결정체,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마주하자. 시선을 돌려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을 보자. 그 사랑 안에 거하자.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자. 더해지는 사랑만큼 흘려보낼 때에만 다시 채워진다. 고인 것은 썩는다.

사랑하자.
늘 진심으로 끝까지 더더욱.



따뜻함을 기다리는 3월의 봄에 이 따뜻함을 선물처럼 소개한 서점, 리스본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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