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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심겨진 꽃
로마서 9장 3) 본문
로마서 9:14-29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로마서 9:16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로마서 9:18 새번역)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9:20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로마서 9:24 새번역)
인간이 내세우는 조건이나 행위와 생각들이 무의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루하기 그지 짝이 없는 떠돌이 나그네인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부터 띠용띠용인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선택 받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하심만 자랑할 수 있다.
아마 이걸 좀 기억하며 살라고 바울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도.
돌로도 행하게 하실 거라는 하나님은 바로의 완악함을 통하여 일하신다. 바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은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참 이상하다 싶기도 한데, 뭐 아무렴. 이분은 천지 만물의 창조자인걸. 온 우주 만물에게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이신걸.
바로를 많이 미워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아니실테지만 이미 바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기를 작정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이 바로를 완악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리고 바로를 계속해서 완악하게 하셨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이끄셨다. 그리고 출애굽을 잊지 말라고 자손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전하게 하셨다. 우리가 보았을 때는 그냥 악인이지만 이 악을 도구로 쓰시는 섬세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사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나도 이에 속한다. 어떻게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다니! 그저 은혜이고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나는 평가한다. 장난아니게 평가한다. 수도 없는 나만의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에 맞추어 사람을 제단하려고 한다. 은혜 갚은 까치는 못되어도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나도 사용하시는데 아무렴! 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수많은 조건을 제시하여 이 아이는 아직 덜 됐어!라고 이야기한 모습이 떠오른다. 반성한다. (회개는... 하지만 계속 이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다. 흐어... ㅠㅠ)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우리'로 부르셨다. 정해진 공식이 없다. 그냥 하나님 마음이 그러시다.
'나'도 부르신 하나님께서 '너'도 부르셨구나! 이렇게 고백되어야 하는데 이리저리 많은 염려들과 잣대가 가득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인간의 조건이나 염려가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도 세워져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인하여 의롭다고 칭해주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내 주변의 어떠한 누구도 못받아들일 사람이 없다. 그저 은혜로 받았기에 나또한 누구도 용납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조건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신다.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의 신실함도 어떻게 보면 행위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게 밖에 볼 줄 모르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신실함이라는 어떠한 행위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행위보다 그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예쁘게 봐주실 수 있다. ^^ 생각하고 상상하고 뭐 어찌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의 일하심만 바라보는 것 뿐이다. (그저라고 말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자리에 불러주신 것을 기쁨과 감격과 감사함으로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만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눈은 제한을 두고 있다. 인간이라 제한적인 눈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감히. 토기인 주제에 다른 토기를 폄하하고 있다. 이것은 본의 아니게 토기를 빚으신 토기장이인 하나님을 폄하하는 것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ㅠㅠㅠ 깨트리시는 분도, 새롭게 빚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말이다. 이런 멍청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봐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하나님의 관점이 내 안에 임하여 나를 다스리도록 성령을 구하자. 인간적인 조건과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성령의 자리를 내어드리자.
여전히 이건 아닙니다. 라고 반응하는 내 마음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수용성보다는 이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일하심을 따르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내 오만이 창궐하지 않기를 성령께서 다스려주실 것을 소망한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매 순간 살아낼 수 있기를. 그렇게 하나님의 긍휼로 용납할 수 있기를. 지금도 그 긍휼과 사랑으로 나와 동행하시며 함께 울며 웃으시는 하나님을 내 삶의 순간순간 늘 기억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로마서 9:16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로마서 9:18 새번역)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9:20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로마서 9:24 새번역)
인간이 내세우는 조건이나 행위와 생각들이 무의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루하기 그지 짝이 없는 떠돌이 나그네인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부터 띠용띠용인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선택 받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하심만 자랑할 수 있다.
아마 이걸 좀 기억하며 살라고 바울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도.
돌로도 행하게 하실 거라는 하나님은 바로의 완악함을 통하여 일하신다. 바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은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모습은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참 이상하다 싶기도 한데, 뭐 아무렴. 이분은 천지 만물의 창조자인걸. 온 우주 만물에게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이신걸.
바로를 많이 미워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아니실테지만 이미 바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기를 작정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이 바로를 완악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리고 바로를 계속해서 완악하게 하셨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이끄셨다. 그리고 출애굽을 잊지 말라고 자손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전하게 하셨다. 우리가 보았을 때는 그냥 악인이지만 이 악을 도구로 쓰시는 섬세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사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나도 이에 속한다. 어떻게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다니! 그저 은혜이고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나는 평가한다. 장난아니게 평가한다. 수도 없는 나만의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에 맞추어 사람을 제단하려고 한다. 은혜 갚은 까치는 못되어도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나도 사용하시는데 아무렴! 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수많은 조건을 제시하여 이 아이는 아직 덜 됐어!라고 이야기한 모습이 떠오른다. 반성한다. (회개는... 하지만 계속 이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반응하고 있다. 흐어... ㅠㅠ)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우리'로 부르셨다. 정해진 공식이 없다. 그냥 하나님 마음이 그러시다.
'나'도 부르신 하나님께서 '너'도 부르셨구나! 이렇게 고백되어야 하는데 이리저리 많은 염려들과 잣대가 가득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인간의 조건이나 염려가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도 세워져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인하여 의롭다고 칭해주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내 주변의 어떠한 누구도 못받아들일 사람이 없다. 그저 은혜로 받았기에 나또한 누구도 용납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조건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신다.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의 신실함도 어떻게 보면 행위로 보여질 수밖에 없다. 아니, 그렇게 밖에 볼 줄 모르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신실함이라는 어떠한 행위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행위보다 그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예쁘게 봐주실 수 있다. ^^ 생각하고 상상하고 뭐 어찌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님의 일하심만 바라보는 것 뿐이다. (그저라고 말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자리에 불러주신 것을 기쁨과 감격과 감사함으로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만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눈은 제한을 두고 있다. 인간이라 제한적인 눈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감히. 토기인 주제에 다른 토기를 폄하하고 있다. 이것은 본의 아니게 토기를 빚으신 토기장이인 하나님을 폄하하는 것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ㅠㅠㅠ 깨트리시는 분도, 새롭게 빚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말이다. 이런 멍청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봐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하나님의 관점이 내 안에 임하여 나를 다스리도록 성령을 구하자. 인간적인 조건과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성령의 자리를 내어드리자.
여전히 이건 아닙니다. 라고 반응하는 내 마음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수용성보다는 이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일하심을 따르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내 오만이 창궐하지 않기를 성령께서 다스려주실 것을 소망한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매 순간 살아낼 수 있기를. 그렇게 하나님의 긍휼로 용납할 수 있기를. 지금도 그 긍휼과 사랑으로 나와 동행하시며 함께 울며 웃으시는 하나님을 내 삶의 순간순간 늘 기억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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