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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심겨진 꽃
로마서 10장 1) 본문
로마서 9:30-10:13
그들은(유대인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9:32 새번역)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내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내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로마서 10:1 새번역)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로마서 10:10 새번역)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로마서 10:12 새번역)
율법과 거리가 멀었던 이방인은 의를 얻었으나, 율법에 사로잡혀 살아온 유대인은 의를 얻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믿음과 행위로 설명하며 여전히 동족 유대인이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울.
생각한다. 아마도 선택받았다는 본인이 아니라 이방인이 구원에 이르게 됨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 더욱 이를 배척하려고 고군분투 하였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이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지는 꼴을 반복해서 겪다보니 죄가 틈타 이것이 오기로 이어지게 되면서 이방인들이 믿는 예수님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속속의 상황에 무지하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이다.)
이는 나 또한 내 안의 율법으로 다른 이들을 가두려고 하는 행위의 결과는 결국 나를 드높이는 교만의 행위로 이어짐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절대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했었으나 아니다. 그냥 같은 모습이었다.
저들은 아니야, 저들은 틀렸어. 라고 하는 것은 나는 맞아, 나는 옳아. 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령, 말로 내뱉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득 넘치는 생각으로 교만을 떨고 있었다.) 나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삐뚤어진 열성을 뿜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자존심이 상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휴... ㅠㅠㅠㅠ
바람직하지 못한 흐름을 끊는다고 하였으나 그들을 탓하면서도 나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이 교만한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최고 교만은 내 중심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과는 다름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쓸데없는 열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쓸데없는 열정은 하나님의 일하심마저 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될 법한 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ㅠㅠㅠ
말씀을 통하여 나를 돌아볼 수 있음이 은혜다. 내가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것은 말씀 속에 내 삶을 투영시켜 비추어 볼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은혜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장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대로 살아갔던 본이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 공동체에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보이시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내 구원을 행위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대로 말해서는 안된다. 그냥 내 믿음의 고백을 진실하게 할 뿐, 그리고 이 고백을 정말 진실되게 믿을 뿐이다.
그리고 이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며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누리며 매일을 살아냄으로 인하여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신뢰하는 자가 되길. 제-발.
그들은(유대인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9:32 새번역)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내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내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로마서 10:1 새번역)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로마서 10:10 새번역)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로마서 10:12 새번역)
율법과 거리가 멀었던 이방인은 의를 얻었으나, 율법에 사로잡혀 살아온 유대인은 의를 얻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믿음과 행위로 설명하며 여전히 동족 유대인이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울.
생각한다. 아마도 선택받았다는 본인이 아니라 이방인이 구원에 이르게 됨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 더욱 이를 배척하려고 고군분투 하였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이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지는 꼴을 반복해서 겪다보니 죄가 틈타 이것이 오기로 이어지게 되면서 이방인들이 믿는 예수님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속속의 상황에 무지하기에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이다.)
이는 나 또한 내 안의 율법으로 다른 이들을 가두려고 하는 행위의 결과는 결국 나를 드높이는 교만의 행위로 이어짐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절대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이야기 했었으나 아니다. 그냥 같은 모습이었다.
저들은 아니야, 저들은 틀렸어. 라고 하는 것은 나는 맞아, 나는 옳아. 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령, 말로 내뱉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득 넘치는 생각으로 교만을 떨고 있었다.) 나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삐뚤어진 열성을 뿜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자존심이 상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휴... ㅠㅠㅠㅠ
바람직하지 못한 흐름을 끊는다고 하였으나 그들을 탓하면서도 나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이 교만한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최고 교만은 내 중심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과는 다름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쓸데없는 열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쓸데없는 열정은 하나님의 일하심마저 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될 법한 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ㅠㅠㅠ
말씀을 통하여 나를 돌아볼 수 있음이 은혜다. 내가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것은 말씀 속에 내 삶을 투영시켜 비추어 볼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은혜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장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대로 살아갔던 본이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 공동체에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보이시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내 구원을 행위로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대로 말해서는 안된다. 그냥 내 믿음의 고백을 진실하게 할 뿐, 그리고 이 고백을 정말 진실되게 믿을 뿐이다.
그리고 이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며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누리며 매일을 살아냄으로 인하여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신뢰하는 자가 되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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