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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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각

아듀 2017 -1

사랑스러운_ 2018. 1. 17. 17:01
나의 2017년.

내 삶의 여러 부분 중 어떤 역할에 치중하고 있었는지, 내 마음 안에 무엇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는지, 찬찬히 돌아보면 아마 청년드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도 맞으니. 

내 역할에 따른 삶의 부분들을 돌아보자. 

1. 공동체 회장

시작은 2016년 가을이었다. 계속해서 보게 하시고, 진짜 공동체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권하게 하시는 등 여러 차례 세차게 몰려왔던 공동체를 향한 굉장한 영적 부담감이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돌로 내리쳐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공동체의 계속 되는 안타까운 모습에 내 생일 즈음하여 포기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했을 무렵, 결국 이 공동체의 회생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말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순간을 보냈다. 물론 누군가 묻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의 만남을 통해 흘러보낸 시간은 있다. 그러고나서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은 대략, 아니 아주 심하게 심하게 난감했다. 불편함이 가득한 내 마음을 교정하시려고 만나게 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필요함을 듣게 되고 아니나 다를까 다수결에 의하여 선출된 선출직 회장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는 여느 후보와 같이 그 자리를 회피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뭐라 말했는지 사실 다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나는 아니고 다른 어른 친구들이 되어 세대 교체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발언이었을 것이다. 총회 회의록을 보면 알겠지.) 겸손함의 태도는 1도 아니었고, 그당시 나의 가장 진솔한 마음이었다. 누구 하나 내가 하겠다라는 발언이 없어서였을까, 그중 가장 눈에 띄게 활동했었던 내가 선출되었다. 그리고 이야기 했다. 공동체의 무너지지 않는 벽으로 인하여 많이 힘든 내 마음, 그대들의 마음 또한 비슷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 마음의 시작이 결국 공동체의 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것이라며. 그렇기에 함께 가자고 이야기 했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_)

그리고 시작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수많은 상황들이 2016년 끝자락에 선 나를 곤두박질치게 하였다. 시작은 그들의 상심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였고, 그 상심한 마음이 폭발하게한 도화선이 내가 되었다. 그리고 끝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내 허락이 없이 나도 모르게 내가 발화점이 된 이상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마음을 내가 100% 이해할 수 없으나 십분 존중한다고. 그래서 더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말 리더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너희들의 아픔을 내가 해결할 수 없으나 그럴 수 있도록 내가 이야기 하겠다고. 악으로 치닫는 이 상황(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리고 내가 경험하기엔)을 그들이 내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러 조항을 세워 이야기를 하였듯 나 또한 그 방법 뿐이 아니라는 것과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여러 조항을 세워 이야기를 하였으나 돌아온 답이나 돌아온 태도는 나를 많이 상하게 하였고, 결국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밀어붙였고 결과는 그들이 원치 않았으나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로 뒤덮인 상황만 초래하였다. (물론 당사자들 간에는 사과와 이해의 시간이 마련되었으나 모두 해결되진 않았고, 특히 그 사이에 내 의지와 관계 없이 머물러 있었던 나에겐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깊게 남아 떠올리기만 해도 생채기에서 피가 철철 흐르듯 역한 심정과 짜증 섞인 아픔의 눈물이 흐른다.)

이런 상황이 내 앞에 펼쳐졌기에 12월 중순이 될 때까지 내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회장이라는 직함도 싫었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더욱 더 싫었다. 일부러 말씀과 기도를 더욱 일삼지 않았고 예배 시간에 자리는 지키지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눈만 감고 앉아있던 시간도 있다. 

하지만 딱 2주 후,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자리, 왜 하필 나인가? 라는 질문에 매달렸고, 답을 제시하셨기에 하나님의 열심과 부르심 앞에 이를 악물고 눈을 꼭 감고 순종하겠다고 고꾸라졌다. 대단한 내가 아니지만 부모와 조부모를 통해 목회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선 내 감정의 좋고 싫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하다라는 것은 꼭 심어 주셨기에 지금의 공동체의 무너짐 속에 내가 필요했고, 그닥 교회와 사람들의 인정을 큰 중요도로 두지 않게 자라게 하셨기에 지금의 공동체 리더의 무너짐 속에 내가 필요했고, 진짜 공동체의 유익과 공동체 안의 하나님과 공동체 지체를 위한 마음, 리더들을 향한 배려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미 알게하시고 경험하며 자라게 하셨기에 지금의 공동체의 무너짐 속에 내가 필요했다. 그냥 딱 그 이유로 '알겠습니다. 이제 입 다물고 하겠습니다. 제일 많이 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게 되었고, 2017년을 살게 했다. 그리고 사람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움직였다. 

늘 공동체 내에 터줏대감처럼 섬겨온 지체들 (물론, 정말 애쓰고 힘써 섬겨온 이들이다. 폄하하는 의미는 없다. 그냥 세대 교체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 아닌 완전 새로운 사람을 세움으로서 공동체의 막힌 흐름을 뚫는 것이 필요했다. 정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한 친구를 만났으나 내 마음이 앞섰다는 것을 깨닫고 공동체를 더욱 누리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다. (막상 공동체 안에서 허우적 대며 있었던 이 친구를 보면 끝까지 하자고 매달렸어야 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름 누리고 경험하고 있으니 아쉬움이 있으나 그걸로 됐다.) 그리고 예상 밖의 만남과 쓸데없이(?) 지나가는 말로 흘렸던 순간으로 다섯 명이 구성이 되었다. 두 가지 물음과 요구(?)가 있었다. 첫 번째 질문, 공동체는 너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래서 결국 네가 누리고 싶은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 두 번째 질문, 공동체 내 어려운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과의 관계 회복에 의지가 있는가? 있으면 기한 내에 회복해라. 그리고 마지막 요구는 한 가지 뿐이었다. 무조건 목사님께 순종하라는 것.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하며 이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정리해주었다. 아쉬운 것은 싫은 사람에 대한 관계 회복에 대하여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다. 뭐 그렇게 그 당시는 은혜로 꾸렸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음.. 뭐.... 일단 1년을 어떻게든 보냈고 마무리 했으니 그것으로 족한다.

12월 중순 즈음 멘토 그룹에 대대적인 변경 또한 있으면서 분주하게 12월을 보냈고, 

그렇게 2017년 1월 1일 첫 주일을 맞이하였다. (사실 2016년 12월 25일 마지막 주부터 함께 만든 첫 시간이 있다.)

잠잠히 예배만 드리고 있다가 빵 맞은 기분으로 분주하게 예배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많은 손길이 필요하였다는 것에 이 자리에서 섬겼던 이들의 수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으나 도움이 전혀 없었던지라 함께 하는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그들의 눈총과 함께 마구 작아졌던 우리 친구들의 모습에 많이 안타까웠던 것 같다. 여전히 그 힘듦의 기억으로 불평이 있고 아픔이 있으나 그랬던 기억으로 인하여 2018년을 섬기게 되는 친구들을 더 섬기는 자리에 있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감사한 부분이다. 

서로의 맞지 않음, 한 번도 교회 사역을 해보지 않은 이들, 교회 사역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누려본 적이 없는 이들을 데리고 함께 한 1년은 내게 여정이 아니라 모험이었다. 12월까지 지속된 이 모험같은 시간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정도로 질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이탈하지 않고 그래도 자리를 끝까지 지켜준 것에 대해선 이들로선 굉장한 내려놓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도 수고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사실 첫 모임부터 삐그덕이었다. 신앙 성숙을 위한 준비 또한 일로 여기고 거부하는 사태에 대하여 어안이 벙벙하였다. 사실 이 아이가 이렇게 말을 했기에 내가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 오케이 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바꾸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고 그것을 이행하고 싶었다. (아마 이건 이전의 행위에 대한 내 자존심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부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했다. 아.. 이들은 나와 같이 할 수 없구나. 이들에게 그냥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고 공동체를 경험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심겨졌다. 동역자라기보다 내 가족원으로 잘 데리고 있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함께 공동체 내의 마을장의 역할을 하는 친구들과 공동체의 변화를 논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있자고 했기에 마음의 큰 부담을 나눠지고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내 생각이 앞섰던 것일까. 하나님은 교회 내 내가 신뢰하던 관계에 있는 지체들을 쳐내셨다. 극도로 외롭게 하셨다. 코너로 밀어넣으셨다. 하나님께 나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지 않았기에,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렇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모습이었기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을 동시에 잃었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공동체를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논하며 공동체됨을 강조하는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공동체 안에서 혼자였고 아마 그 누구보다도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런 외로움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육체적인 힘듦이야 짧게 자더라도 푹 쉼을 주셨기에 그건 힘듦에 속하지도 않는다. 함께 공동체를 세워갈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 많이. 아주 많이. 

더군다나 이 외로움을 공동체의 장이 어디 가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할 수 없다. 하지만 외로움 속에 또래 친구들, 기도하는 자리를 지켜준 친구들은 내게 숨을 쉴 수 있는 쉼이 되어 준 하나님의 선물이다. 애써 하나님이 내게 보루로 남겨주신 친구들은 그냥 감사의 존재이며 이 사역을 끝까지 달려올 수 있게 해 준 힘이 되어준 존재다. 

돌아보면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내게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 딸 & 누나

3. 교사

4. 친구

5. 학생

대학원 4학기와 5학기, 논문학기를 지나오면서 학생의 신분으로 마땅히 해야하는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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