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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각

무례한 아이

사랑스러운_ 2017. 8. 13. 19:57

동생의 여자친구는 많이 살갑다. 

(살갑다고 표현하는 것이 이 아이에 대한 내 최선의 표현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살가운 이 친구가 아빠가 휴가나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굳이 우리집에 놀러온단다. 그래, 여기까진 i got it. 그런데 이 친구랑 내 방에서 같이 자란다. 헐. 폭발했다. 이상한 아이라고 소리질렀다. 지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내가 이런 마음이 들거 라고 우리 가족 구성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한 거지. 


잠들기 전까지 내일 아침에 굳이 이야기 하겠노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먼저 오라고 했다면 엄마 탓을 할 거고, 이 친구가 먼저 온다고 했다면 이 친구와 이 친구의 부모님 탓을 할 거고, 뭐 각종 시나리오를 나 혼자 머리 속으로 쓰면서 잠이 들었다.


이윽고 아침. 오랜만에 네 식구가 다같이 모인 식탁이었다. 이 아침에 이 이야기 하지 않으면 결국 내 의견이 묵살될 것이고, 내가 그 아이랑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할 상황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내에는 이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갈치를 뜯으면서 굳이 이야기를 꺼냈다.


'나 그 아이 싫어'


'정말 싫어'


웃으면서 이야기가 오갔지만 심지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까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무례하다고 생각했을까.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집에 온다는 것에 굳이 그런 반응을 왜 했을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생각해보았다.


언젠가부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이 친구가 떡하니 들어왔다. 지난 설 이후로 나도 못 뵌 우리 할머니를 심지어 따스한 봄날에 봤다. 그리고 나도 예쁜 꽃밭에서 찍지 못한 사진을 우리 가족과 함께 찍었다. 아빠가 휴가 나왔을 때 나도 같이 맛있는 회를 못 먹었는데 아빠엄마랑 그 친구와 심지어 그 친구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아빠는 내 안부는 안물으면서(사실 매일 아침저녁 페이스톡을 한다) 우리집 카톡방에 그 친구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빠가 휴가 나오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우리집에 온단다. 그리고 자고 간단다. 뭔 소리야. 나 다음날 개학인데!


결론이 내려졌다.

'내 자리를 침해(침범)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나의 자리이고 내가 딸로 손녀로 누나로 누려야만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내 영역에 무례하게 허락없이 들어와서 난도질 해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내 사랑하는 아빠 엄마를 빼앗긴 것만 같은 느낌까지 이어진다. 엉엉.ㅠㅠ (그래, 동생은 빼앗아가는걸 백퍼 허용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 오케이.) 또 먼저 난 나를 물리치고 굳이 먼저 결혼을 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불쾌한 마음까지 이어지면서 나를 낙오자로 만든다는 생각까지 든다. 끝이없는 부정적 에너지가 나를 휘어감는다.


정말 소스라치게 싫었다. 그리고 싫다. 여전히 나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굳이 내 동의가 꼭 필요한 부분이냐는 것을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내 동의가 중요하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가족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 아직은 결혼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꼭 수렴해달라고 전하라고 지난번 엄마아빠와 그 아이 부모님께서 만나는 때에 아빠한테 분명하게 피력했다. 이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자꾸 치고 들어오는 이 아이를 본능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아니야. 라는 반응으로 말이다. 평생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이없게도 벌써부터 시누이짓한다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 가족 구성원으로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너무나도. 준비된 마음이 아니다. 그런데 너무 훅 다가온다. 너무. 너무나.


사실 결혼 이야기가 오고가면서부터 남부럽지 않게 친밀한 교제를 일삼았던 동생과의 사이도 (내가 느끼는 바로) 대화없이 꽉 막혔다. 이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고, 동생도 미안한 마음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눈치를 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마음과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도 내 마음은 여전히 뾰족하다. 


내가 먼저 함께 할 동반자를 소개시키고 내 삶의 2막을 setup 해놓은 상황이었다면 다른 마음이었을까? 나의 부모님께 살갑게 잘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이 친구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 서글퍼진다. 생각하고 싶지 않고 지금 감정에 충실하게 뿜뿜 부정적 감정 뿜뿜 하고 있다.


아빠는 말했다. 

'우리 딸이 말만 그렇지 잘해줄거야.'


그 말에 더 볼멘소리를 하였다. 

'아닌데? 말만 그런거 아니고 진심인데?'


나 아닌 모든 가족은 이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사실에 사실 더 마음이 상했다. 굳이 마음 상하진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나의 이런 복잡 다난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당연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진행되고 있는 모든 상황이 싫다. 나는 여전히 아니다. 여전히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왜 내 동의없이?


다행히 나의 아침 식탁에서의 소리없는 눈물 때문이었을까. 막 지껄인 말 때문이었을까. 이 아이는 오지 않았고, 동생이 갔다. 마음이 좋지 않다. 이런 관계를 만든 이 아이를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니 참 처량하고 못났다. 너무 싫다. 이런 상황을 만든 아이가 싫어진다. 이 친구는 나를 많이 좋아한단다. 이 말에도 발끈해서 뭘 안다고 좋아한다고 말하냐며 그런 것이 싫다고 소리질렀다. 


바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이 바쁘고 여유없이 돌아가는 인생 속에서 이런 생각까지 해야하다니. 아 싫다 싫어. 정말 싫다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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