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서시 - 윤동주 본문

활자 조각

서시 - 윤동주

사랑스러운_ 2016. 10. 2. 11:18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仰不愧於天 앙불괴어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 仰不愧於天 앙불괴어천
우러러볼 앙, 이닐 불, 부끄러울 괴, 어조사 어, 하늘 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 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 출전 孟子(맹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

유효기간 없는 애도의 행복
출처 : 한겨레 | 네이버 뉴스
http://naver.me/FMUIMr1a

‘서시’(1941년 11월)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며 함께 슬퍼하는 행복을 택한다. ‘서시’에서 “그리고”라는 단어는 아마득하다.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자기성찰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이후에 “그리고” 나서 나한테 주어진 길,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단다. 내게 주어진 길을 가기 전에 먼저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못 말릴 다짐이다.

인도나 바티칸이나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진짜 성지순례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찾아가는 일상이어야 한다. 홀로 사는 노인들, 장애인이나 쌍용자동차 해직자 가족이나 용산참사와 세월호 유가족처럼 지금 죽어가는 이들부터 살핀다면, 바로 거기에 예불과 미사와 예배가 있다. 대통령과 정치가와 시민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부터 살핀다면 그 순간에 바로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던적스러운 권력에 몰두하며, 죽어가는 국민을 살피지 않는 지도자는 필요없다.

당연히 애도에는 마감시한이 없다. 함께 통곡하면 위로가 되고, 연대가 생기며, 힘이 솟는다. “영원히”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는 삶이 행복하다며 그는 축하보다 애도 곁으로 가려 한다. 영원히 슬퍼하는 행복한 몰락에 동의하지 않는 자에게 윤동주는 그냥 교과서에 실린 시, 혹은 팬시상품일 뿐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 곁에서 영원히 슬퍼하는 길, 이 짐승스런 시대에 긴급히 필요한 행복론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길에 앞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삶을 걸어야 한다. 윤동주를 읽는 독서만으로 윤동주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빛으로 소금으로 살 때, 그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김응교 시인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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