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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심겨진 꽃
제자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본문
실로 허망하다.
생사의 때를 인간이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것을 익히 알고 있고, 그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셨나..?
하나님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물론 인간의 잘못이 있고, 그 결과 펼쳐진 결과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 죽음에 이르게 하신, 그리고 그 죽음으로 살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그냥 잘 모르겠다.
감사한 것이 있다. 아싸! 이런 감사가 아니라 길게 보았을 때, 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제자의 가정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있다. 끝까지 감사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잘 모르겠다.
이 허망하고 어이없는, 그냥 내가 조문을 간 것도, 아이의 사진이 영정으로 있는 것도, 장례식장에 아이의 이름이 있는 것도, 거기서 조문을 하고 밥을 먹고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전부 다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감정이 없는 건 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건지, 의연하게 삼키고 있는 건 지 뭔 지 눈물도 나지 않는다. 요동치고 분란스럽게 여러 가지 생각이 마구마구 솟는데 정리가 되지 않아서 몹시 당황. 그리고 당황 뿐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는 걸로 귀결된다.
이 허망한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듣자 마자 너무나 당황해서 복잡했고 또 단순해졌다. 그리고 사랑하는 지금의 아이들, 앞으로 만날 아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갈피를 찾지 못하겠더라.
현재, 팔딱 거리는 활어 같은 생기있는 이 친구들에게 현재 무엇을 해줘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무엇보다 누구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더불어 아이들 뿐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느껴진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들이다. 한낱 창조된 사람인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더 사랑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부서져도 사랑할 것이다. 그것이 제발 나의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혀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샘솟는 샘물이시며 내심장이 뛰는 열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길. 어느 때가 되어서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은 숨막히는 인생을 살 때에도 변치 않는 그 사랑이 불현듯 순삭이라도 생각 날 수 있길. 그렇게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버티며 이길 수 있길. 그 사랑을 전하고 싶다.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사랑했던 그 친구의 영혼을 주께 맡긴다. 비록 믿음이 없었다 하더라도, 아주 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심겨졌던 적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다면, 그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을 심은 것으로 인해 무럭무럭 자라나서 새가 깃드는 아름다운 커다란 나무가 되길. 그 영혼을 받으신 주님을 찬양하며, 이 땅에서 살아갈 남은 자들에게 소망이 되어 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잠 못 이루는 새벽밤이다.
교사로서 앞으로 맞닥들이게 될 많은 시간 중 하나라는 말조차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제서야 슬프다. 슬프다.
+ 덧
내가 무의미하게 흘러보낸 하루는 누군가는 애타게 살고 싶었던 하루였으며, 내가 애매하게 드린 예배는 누군가에겐 어마하게 바라고 바라는 예배 였을 것이며, 내가 무의미하게 지출한 돈은 누군가의 삶과 맞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 진짜 부담과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생사의 때를 인간이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것을 익히 알고 있고, 그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셨나..?
하나님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물론 인간의 잘못이 있고, 그 결과 펼쳐진 결과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 죽음에 이르게 하신, 그리고 그 죽음으로 살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그냥 잘 모르겠다.
감사한 것이 있다. 아싸! 이런 감사가 아니라 길게 보았을 때, 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제자의 가정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있다. 끝까지 감사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잘 모르겠다.
이 허망하고 어이없는, 그냥 내가 조문을 간 것도, 아이의 사진이 영정으로 있는 것도, 장례식장에 아이의 이름이 있는 것도, 거기서 조문을 하고 밥을 먹고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전부 다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감정이 없는 건 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건지, 의연하게 삼키고 있는 건 지 뭔 지 눈물도 나지 않는다. 요동치고 분란스럽게 여러 가지 생각이 마구마구 솟는데 정리가 되지 않아서 몹시 당황. 그리고 당황 뿐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는 걸로 귀결된다.
이 허망한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듣자 마자 너무나 당황해서 복잡했고 또 단순해졌다. 그리고 사랑하는 지금의 아이들, 앞으로 만날 아이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갈피를 찾지 못하겠더라.
현재, 팔딱 거리는 활어 같은 생기있는 이 친구들에게 현재 무엇을 해줘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무엇보다 누구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더불어 아이들 뿐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느껴진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들이다. 한낱 창조된 사람인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더 사랑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부서져도 사랑할 것이다. 그것이 제발 나의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혀 곧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샘솟는 샘물이시며 내심장이 뛰는 열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길. 어느 때가 되어서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은 숨막히는 인생을 살 때에도 변치 않는 그 사랑이 불현듯 순삭이라도 생각 날 수 있길. 그렇게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버티며 이길 수 있길. 그 사랑을 전하고 싶다.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사랑했던 그 친구의 영혼을 주께 맡긴다. 비록 믿음이 없었다 하더라도, 아주 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심겨졌던 적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다면, 그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을 심은 것으로 인해 무럭무럭 자라나서 새가 깃드는 아름다운 커다란 나무가 되길. 그 영혼을 받으신 주님을 찬양하며, 이 땅에서 살아갈 남은 자들에게 소망이 되어 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잠 못 이루는 새벽밤이다.
교사로서 앞으로 맞닥들이게 될 많은 시간 중 하나라는 말조차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제서야 슬프다. 슬프다.
+ 덧
내가 무의미하게 흘러보낸 하루는 누군가는 애타게 살고 싶었던 하루였으며, 내가 애매하게 드린 예배는 누군가에겐 어마하게 바라고 바라는 예배 였을 것이며, 내가 무의미하게 지출한 돈은 누군가의 삶과 맞바꿀 수도 있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 진짜 부담과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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