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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심겨진 꽃
로마서 1장 2) 본문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신령한 은사를 좀 나누어주어,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1-12 (새번역)
대도시이자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에 퍼지고 있는 복음. 복음을 접한 이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바울. (1:10)
바울이 이토록 간절히 이들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더 굳센 믿음을 가지도록 권면하기 위함이었다. (1:11) 이것은 결국 복음 전도에까지 이어져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까지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이 깊이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바울 본인도 하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격려받고 세움 받는 시간을 원했다. (1:12) 이미 복음을 접한 자들에게도 아낌없는 관심을 주고, 이들로부터 본인 또한 격려받고자 한다.
공동체의 회장 자리에 있는 나는 공동체의 (많은/모든) 사람들과 함께함이 그저 기쁜가?
혹은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무엇이든) 맘껏 힘을 얻고 있나?
정말 미안하지만 이들과의 나눔 속에서 내가 힘을 얻게 되는 경우, 또 진지하게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물음을 나누거나 삶의 상황이나 고민 등 나눌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내게 있다.
혼자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다. 참 애쓰고 있는데 같이 하는 사람이 없다. 불쌍하다. 측은하다.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공동체를 누구보다 말하고 있으나 공동체를 제일 경험 못하고.. 혹 안하려고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 모습 인 것 같다.
타인을 세워주고 끌어주고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엏는 것이 없고 느껴지지 않는다. 격려받고 위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전혀 없진 않다. 격려와 위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건 교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바울의 고백으로 인해 깨닫게 된다.
복음의 진가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지식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경험되고 드러나는 현실이라고 한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바울의 열정은 의무감과 같은 딱딱함은 아니었다.
복음에 대한 사명과 기대는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새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의 임재가 함께 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둘 중 한 쪽만 지배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의 주인은 성령님이 아닌 우리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는 함께 하는 자들로 인하여 서로의 믿음으로 격려 받는 것을 의미한다. 누릴 수 있는 격려인 것이다. 바울은 이 훈훈함을 기대한 것이다.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바울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연결하는 공통점이다. 이 공통점이 바울을 기대하게 하였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내 개념에서 그려지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말이 좀 이상하긴 하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의 크기와 무관하게 그저 한 하나님만을 신앙하는 그리스도인.
나를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내 교만함과 옹졸함을 대면한다. 내게 허락하신, 내게 이 해에 함께 거닐라고 하신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나는 참 그저 내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인대 그들을 평가하고 포기해버리려고 했었다. 이런 치사한 마음이 내 안에 가-득 했다. 마음을 고치자. 그들은 내가 사랑해야하고 살펴야 할 대상 뿐 아니라 내게 힘을 실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과 같은 존재다.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는 .. 그런 마음을 가진 리더이길 ..
대도시이자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에 퍼지고 있는 복음. 복음을 접한 이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바울. (1:10)
바울이 이토록 간절히 이들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더 굳센 믿음을 가지도록 권면하기 위함이었다. (1:11) 이것은 결국 복음 전도에까지 이어져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까지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울이 깊이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바울 본인도 하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격려받고 세움 받는 시간을 원했다. (1:12) 이미 복음을 접한 자들에게도 아낌없는 관심을 주고, 이들로부터 본인 또한 격려받고자 한다.
공동체의 회장 자리에 있는 나는 공동체의 (많은/모든) 사람들과 함께함이 그저 기쁜가?
혹은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무엇이든) 맘껏 힘을 얻고 있나?
정말 미안하지만 이들과의 나눔 속에서 내가 힘을 얻게 되는 경우, 또 진지하게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물음을 나누거나 삶의 상황이나 고민 등 나눌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내게 있다.
혼자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표현이 딱 맞다. 참 애쓰고 있는데 같이 하는 사람이 없다. 불쌍하다. 측은하다.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 공동체를 누구보다 말하고 있으나 공동체를 제일 경험 못하고.. 혹 안하려고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 모습 인 것 같다.
타인을 세워주고 끌어주고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엏는 것이 없고 느껴지지 않는다. 격려받고 위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전혀 없진 않다. 격려와 위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건 교만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바울의 고백으로 인해 깨닫게 된다.
복음의 진가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지식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경험되고 드러나는 현실이라고 한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바울의 열정은 의무감과 같은 딱딱함은 아니었다.
복음에 대한 사명과 기대는 분리될 수 없으며,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새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의 임재가 함께 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둘 중 한 쪽만 지배하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의 주인은 성령님이 아닌 우리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는 함께 하는 자들로 인하여 서로의 믿음으로 격려 받는 것을 의미한다. 누릴 수 있는 격려인 것이다. 바울은 이 훈훈함을 기대한 것이다.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바울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연결하는 공통점이다. 이 공통점이 바울을 기대하게 하였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내 개념에서 그려지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말이 좀 이상하긴 하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의 크기와 무관하게 그저 한 하나님만을 신앙하는 그리스도인.
나를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내 교만함과 옹졸함을 대면한다. 내게 허락하신, 내게 이 해에 함께 거닐라고 하신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나는 참 그저 내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인대 그들을 평가하고 포기해버리려고 했었다. 이런 치사한 마음이 내 안에 가-득 했다. 마음을 고치자. 그들은 내가 사랑해야하고 살펴야 할 대상 뿐 아니라 내게 힘을 실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과 같은 존재다.
서로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고자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는 .. 그런 마음을 가진 리더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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