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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심겨진 꽃
사도행전 17장 2 본문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베뢰아에서 아테네로 핍박자들을 피하는 도피자의 신분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바울이다.
아테네의 모든 사람, 그리스인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외국인 모두 진리에 대한 갈망보다는 지식체계를 확립하는 것, 자기 철학에 대한 욕망으로 뒤덮힌 자들이다. 기원전부터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학자들이 광장에 모여 철학과 사상을 논하며 경쟁하듯 지식을 과시하고 있는 당대 최고의 사상가들을 대상으로 참진리를 전한다. (이들이 광장에 자리를 내준것은 아마 너 한 번 해봐라, 들어는 줄게 등의 비꼬는 태도였지 않을까.)
1. 적재적소적시 따위 필요없는 매순간 선포
바울은 도피자다. 도피해 온 그곳에서 도피의 이유인 예수그리스도를 또 전한다. 굴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주저함 없이 전한다.
내 삶의 환경은 마치 적군의 소굴과 다름없다. 적지에서 나는 할 수 없는게 없다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존심 상해하면서도 여전히 가만히 있다. 내가 할 수 있는걸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담대함이 없다기보다 긍휼함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아마도 내가 소유한 복음의 능력을 내 스스로 폄하하거나(ㅜㅜㅜㅜ) 아무 생각이 없거나 그렇겠지.ㅠㅠㅠ 이 우매함을 어찌할꼬ㅠㅠㅠㅠㅠㅠ
2.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향한 긍휼함
아테네라는 도시는 각종 문화가 응집된 곳인데 바울이 격분한 포인트는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16)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진리의 본질이자 이유가 되시는데 그밖의 신을 많이 섬기고 있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르며 그곳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지식은 가득하지만 참진리를 모르는 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기도 하겠지.
복음에 무지한 자들을 향한 긍휼함이 나에게 있는가? 내 주변에 내가 소유한 이 참진리를 전할 용의가 충분히 있는가? 그들을 긍휼히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있을 때 어떠한 농락과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이 없는 삶을 부단히도 열심히 살아가는 내 친구들, 동료들, 아이들의 시간에 내가 함께 하는 이유는 아마도 전할 입과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천해야할 때다.
3. 상대방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
적어도 바울이 굉장히 급진적인 사람, 혈기가 앞서는 사람이기만 한 게 아니라 상당한 매너가 있는 지식인인 걸 알게 해주는 본문이다. 회당과 광장에서 바울은 논쟁하고 토론한다. 아마도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모순점을 찾고 전할 것을 어떻게 전해야할 지 고민했지 않을까? 바울이 가진 하나님 나라 복음은 수정될 것이 없는 변함없는 참진리이다. 이 복음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이 다른지, 곡해하고 있는지, 진짜 알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일방적으로 단순히 외침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걸림돌을 제거하여 잘 수용할 수 있게 하려는 지혜가 담긴 바울의 연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단이나 무신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그냥 무차별적으로 배척하고 있진 않은가? 무슨 오류를 가지고 말하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맞다. 무슨 논리로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야 내가 말하려는 하나님 나라를 더욱 설득력있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게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주저함의 합리화가 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4. 전할 진리를 분명하게 해두기
상대를 알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가진 참진리는 더 공고하게 자리하였다. 더욱 변치않는 진리를 분명하게 어디서든 전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입을 열어 전할 하나님 나라 복음은 어떤 것이 들어가야하는가. 바울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사랑을 확증하심. 죽음 뿐 아니라 다시 살리신 부활로 우리에게도 영생의 소망을 주심. 분명한 건 심판이 있다는 것. 여전히 하나님은 모두가 구원에 이르시를 원하시고 기다리고 있으시다는 것.
결국 요약하면,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역사로 말할 수 있다. 믿음의 성장이 내 안에 세계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앎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갖은 지식을 소유하던 자들도 그들만의 옳다고 판단하는 믿음, 즉 가치관에서 부터 오는 신뢰일테니 그걸 부수고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분명히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조과학 라디오 녹음을 하며 다시 생각하게 됨)
그리고 진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자에게 언제든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는 말씀 또한 생각난다. 진짜 준비되어있어야한다. 다른 것보다 내가 말해줄 그 복음.
5. 그냥 전할 뿐
바울의 행적, 바울의 논리 정연함만 보아도 바울이 하는 말은 그냥 진리다. (고대 유명한 인기 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그냥 다 진리였듯.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수백년간 먹혔고 이로 인해 말도 안되는 연금술사들이 판을 쳤던 것처럼) 바울에게 이런 교만함은 없었다. 교만함보다는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여전히 자신의 과거처럼 부인하고 있는 자들을 향한 긍휼로 갖은 모진 핍박을 견디며 온 지역을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겠지.
언젠가 새가족 양육 피드백을 하며 그런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다. 바울이 전해도 반응은 둘로 나뉜다. 우리의 논리 정연하지 못한 이야기든, 바울의 논리 정연한 이야기든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은 우리 몫이 아니다.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니! (아볼로는 물주고 뭐 그 구절이 생각난다. 결국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두려워하지말고 그냥 전해! 참진리를!!!
시대가 아프다. 그래서 어느 세대 막론하고 모두 아프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때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만이 모든 자들을, 모든 만물을 새롭게 회복시킬 수 있다.
복음을 이미 알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사명은 다름 아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모두가 함께 누리며 살아가도록 나의 삶으로 전하고, 입으로 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7:22 - 31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23.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24.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25.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신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30.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31.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아테네의 모든 사람, 그리스인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외국인 모두 진리에 대한 갈망보다는 지식체계를 확립하는 것, 자기 철학에 대한 욕망으로 뒤덮힌 자들이다. 기원전부터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학자들이 광장에 모여 철학과 사상을 논하며 경쟁하듯 지식을 과시하고 있는 당대 최고의 사상가들을 대상으로 참진리를 전한다. (이들이 광장에 자리를 내준것은 아마 너 한 번 해봐라, 들어는 줄게 등의 비꼬는 태도였지 않을까.)
1. 적재적소적시 따위 필요없는 매순간 선포
바울은 도피자다. 도피해 온 그곳에서 도피의 이유인 예수그리스도를 또 전한다. 굴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주저함 없이 전한다.
내 삶의 환경은 마치 적군의 소굴과 다름없다. 적지에서 나는 할 수 없는게 없다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존심 상해하면서도 여전히 가만히 있다. 내가 할 수 있는걸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담대함이 없다기보다 긍휼함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아마도 내가 소유한 복음의 능력을 내 스스로 폄하하거나(ㅜㅜㅜㅜ) 아무 생각이 없거나 그렇겠지.ㅠㅠㅠ 이 우매함을 어찌할꼬ㅠㅠㅠㅠㅠㅠ
2.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향한 긍휼함
아테네라는 도시는 각종 문화가 응집된 곳인데 바울이 격분한 포인트는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16)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시고 구원자이시며 진리의 본질이자 이유가 되시는데 그밖의 신을 많이 섬기고 있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르며 그곳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지식은 가득하지만 참진리를 모르는 자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기도 하겠지.
복음에 무지한 자들을 향한 긍휼함이 나에게 있는가? 내 주변에 내가 소유한 이 참진리를 전할 용의가 충분히 있는가? 그들을 긍휼히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있을 때 어떠한 농락과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이 없는 삶을 부단히도 열심히 살아가는 내 친구들, 동료들, 아이들의 시간에 내가 함께 하는 이유는 아마도 전할 입과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천해야할 때다.
3. 상대방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
적어도 바울이 굉장히 급진적인 사람, 혈기가 앞서는 사람이기만 한 게 아니라 상당한 매너가 있는 지식인인 걸 알게 해주는 본문이다. 회당과 광장에서 바울은 논쟁하고 토론한다. 아마도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모순점을 찾고 전할 것을 어떻게 전해야할 지 고민했지 않을까? 바울이 가진 하나님 나라 복음은 수정될 것이 없는 변함없는 참진리이다. 이 복음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이 다른지, 곡해하고 있는지, 진짜 알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일방적으로 단순히 외침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걸림돌을 제거하여 잘 수용할 수 있게 하려는 지혜가 담긴 바울의 연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단이나 무신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그냥 무차별적으로 배척하고 있진 않은가? 무슨 오류를 가지고 말하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맞다. 무슨 논리로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야 내가 말하려는 하나님 나라를 더욱 설득력있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게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주저함의 합리화가 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4. 전할 진리를 분명하게 해두기
상대를 알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가진 참진리는 더 공고하게 자리하였다. 더욱 변치않는 진리를 분명하게 어디서든 전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입을 열어 전할 하나님 나라 복음은 어떤 것이 들어가야하는가. 바울의 연설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사랑을 확증하심. 죽음 뿐 아니라 다시 살리신 부활로 우리에게도 영생의 소망을 주심. 분명한 건 심판이 있다는 것. 여전히 하나님은 모두가 구원에 이르시를 원하시고 기다리고 있으시다는 것.
결국 요약하면,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역사로 말할 수 있다. 믿음의 성장이 내 안에 세계관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앎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갖은 지식을 소유하던 자들도 그들만의 옳다고 판단하는 믿음, 즉 가치관에서 부터 오는 신뢰일테니 그걸 부수고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분명히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조과학 라디오 녹음을 하며 다시 생각하게 됨)
그리고 진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자에게 언제든 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는 말씀 또한 생각난다. 진짜 준비되어있어야한다. 다른 것보다 내가 말해줄 그 복음.
5. 그냥 전할 뿐
바울의 행적, 바울의 논리 정연함만 보아도 바울이 하는 말은 그냥 진리다. (고대 유명한 인기 학자들이 말하는 것은 그냥 다 진리였듯.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수백년간 먹혔고 이로 인해 말도 안되는 연금술사들이 판을 쳤던 것처럼) 바울에게 이런 교만함은 없었다. 교만함보다는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을 여전히 자신의 과거처럼 부인하고 있는 자들을 향한 긍휼로 갖은 모진 핍박을 견디며 온 지역을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겠지.
언젠가 새가족 양육 피드백을 하며 그런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다. 바울이 전해도 반응은 둘로 나뉜다. 우리의 논리 정연하지 못한 이야기든, 바울의 논리 정연한 이야기든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은 우리 몫이 아니다. 그냥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니! (아볼로는 물주고 뭐 그 구절이 생각난다. 결국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 두려워하지말고 그냥 전해! 참진리를!!!
시대가 아프다. 그래서 어느 세대 막론하고 모두 아프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때지만 하나님 나라 복음만이 모든 자들을, 모든 만물을 새롭게 회복시킬 수 있다.
복음을 이미 알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사명은 다름 아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모두가 함께 누리며 살아가도록 나의 삶으로 전하고, 입으로 전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7:22 - 31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23.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24.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25.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신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30.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31.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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