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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각/엄마라니!!

아이의 독립 (f.어린이집 입소)

사랑스러운_ 2024. 2. 6. 14:48

늘 나와 함께던 아들을 33개월 만에 뗀다.
누가 보면 참 어리숙하고 미련할 만큼 오래 가정보육을 한 것일테지만, 뱃속 아기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내년 유치원 갈 즈음까지 함께 했을 것 같다.

사실 11주에 유산한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파트 단지 내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놨었고 그 다음 아기가 찾아오고 35주가 되는 지금까지 대기 중이다. 이미 보내려고 마음 먹은지 벌써 1년 하고도 반 년이 지났다. 그러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고, 단지를 벗어나서까지 아이를 보낼 마음은 없었기에 지금까지 함께 했다.
신생아를 포함한 아이 둘을 내가 다 감당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등하원차량을 이용해야할 거리에 있는 공립 어린이집이 3월 입소 확정이 되어 있지만(여전히 단지 내 국공립은 대기 중), 동생이 나오기 임박한 3월에 보내면 너무 힘들 것 같아 2월에 입소 가능한 곳을 알아보다가 마땅한 곳을 찾았다.
내 기억엔 또렷하지 않으나 5살에 첫 기관 경험을 한 나는 동생을 업고 엄마랑 함께 등하원을 하고 교실보다는 엄마와 동생과 원장실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만큼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힘들었다는 거. 그리고 남편도 힘든 시간이었다고 하더라. 그렇기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있는 것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큰 지 너무나 잘 알기에 보내기 전부터 마음이 아렸다.

이미 12월부터 뱃 속 동생을 낳으면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하고, 유치부 예배를 드려야한다는 등 아이에게 불안과 염려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해둔 것이 지혜로웠는지 화근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그 즈음부터 집에서도 내 바지자락을 놓지 않고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근 두 달을 나도 아이도 서로에게 너무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일방적이었나. 임신 7-8개월차를 보내면서 없던 치질 발병에 무거워진 몸으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극심하게 힘들었고, 남편도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아-주 많은 시기라서 모든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어내고 짜증을 쉴 새없이 쏟아내었다. 아주 미친여자처럼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고나서 미안해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운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미안한 마음 가득이다. 짠하다 짠해. 아이는 나에게 사랑만을 고백하고 사랑만 요구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바로 기관에 되는대로 얼른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이상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어차피 난 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꼬박 33개월의 가정보육을 끝내고, 2024년 2월, 아이의 34개월의 시작과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4일 째.
첫 날은 함께 등원해서 낯선 교실에서 낯선 선생님과 낯선 친구들과 낯선 활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3시간 보내고 나왔다. 둘째 날은 함께 등원해서 1시간 같이 있다가 슬쩍 나와서 1시간 30분을 떨어져 지냈다. 그리고 친구들이 낮잠이불을 펴서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보고 함께 나왔다. 아이는 나를 찾았지만 어찌저찌 울음을 조금 참고 보냈다고 한다. 셋째 날은 낮잠 이불을 가지고 가서 30분을 함께 있다가 또 슬쩍 빠져서 낮잠까지 자고 4시간 30분을 떨어져 지냈다. 하원을 위해 찾아갔을 때 원망의 눈빛은 아니지만 나에게 달려오지 않고 선생님 뒤에서 쭈뼛쭈뼛하게 나오는 게 속상했으나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고자 좋아하는 딸기를 사러 코스트코에 갔었지. 그리고 넷째 날인 오늘은 이야기를 하고 나와야겠다 싶어서 시계를 가리키며 짧은 바늘이 3, 긴 바늘이 12에 가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오열하며 엄마와 함께 있을 거라는 아이를 뿌리치고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선생님의 연락이 없으니 불안을 내려놓는다. 어찌되었건 선생님은 영유아 전문가라고 나는 믿기에.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으실테니.
문 밖까지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많이 속상하기도하고 짠하기도하고 어렵기도하고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아이는 어떠할까 싶어서 마음이 더 아팠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지나가야하는 과정이니 어쩔 수없는 것이란 굳은 마음도 함께. 이전까진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없이 가방도 잘 메고 왔는데, 내일부터 안간다 그러면 어쩌지 싶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교차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평안이 임하길 기도할 뿐. 내가 해줄 수 없는 일이니 아이가 스스로 버티고 지나가야하는 시간이니.. 그리고 이 시간은 엄마인 나도 지나가야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독립은 사실 내 뱃속에서 나온 시간이었다. 아이가 4kg이 넘었기에 40주를 넘기고서 무조건적인 유도분만이 필요했고 초산이라 유도 시작 후 34시간이 지나 출산을 할 수 있었다. 배가 아래로 처지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할 정도로 나올 기미가 없었고, 긴긴 시간 해산의 고통을 겪었으나 아이의 심박수는 일정했고, 양수를 터트리고서도 7-8시간이 지나서 나올 정도로 계속 위에서 놀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뱃속에서 나오는 그 독립의 시간을 마주했다. 엄마와 40주의 시간을 꼬박 함께 하고서 큰 소리를 내어 스스로 호흡을 했다. 이때 나는 출애굽을 묵상하고 있었고, 아이가 나오는 것이 마치 출애굽으로 묵상할 수 있었다. (언젠가 주루룩 기록할 일이 있을 듯)

두 번째 독립은 젖을 뗄 때였다. 15개월을 모유수유를 했다. 물론, 마지막 한 달은 2-3번에서 1-2번으로 점차 줄여갔다. (밤에 잘 자는 아이였기에 밤수유는 이미 끊은지 오래) 그리고 마지막 2주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 수유를 했다. 물을 마시는 연습도 해서 빨대 물병에 물을 먹이기도 했고. 그렇게 딱 15개월까지 먹이고, 16개월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는 내가 주지 않으니 찾지 않았다. 이전에도 젖을 과하게 찾지  않았으나 내가 괜히 잠 자기 전에 잠을 재우는 용도였나 싶을 정도로 찾지 않않다. 서운할 정도로. 그리고 이젠 내 몸으로는 이 친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라는 생각에 진정한 독립을 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아이도 힘들겠지만 내가 더 힘들구나. 아이보다 아이를 떼는 부모가 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닐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부모님과의 갈등을 통해 나보다 엄마아빠가 더 어려워하셨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걸 알기에 이걸 더 연결하기 쉬웠다. 여전히 우리 엄마아빠는 힘드시겠지. 애가 쓰이실 거고. 타지에서 우리 딸이 아이를 키우며 고생할 것에 더더욱.

이번 어린이집 입소가 아마 내 기억의 세 번째 독립일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더 먹먹하고 아쉽다.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랑 노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좋다고 말하며, 엄마가 어린이집에 함께 하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늘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사실. 그러나 인생의 긴 그래프 안에서 여러 차례 우리가 겪어야 할 독립의 과정 중 한 과정을 밟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 시간이 또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 세 번째 독립이 참 어렵지만, 얼마나 더 어려운 시간을 또 보낼까 싶다. 그것도 아이보다 내가.

아이의 독립이 아니라 나의 독립인 것 같다. 하하. 아이도 나도 응원이 가득 필요하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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