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말씀과 마주하다
열왕기상 10장
사랑스러운_
2019. 7. 31. 14:31
23-24 솔로몬 왕은 재산에 있어서나, 지혜에 있어서나, 이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온 세계 사람은 모두, 솔로몬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의 말을 들으려고 하였다.
솔로몬이 지혜가 가득이라는 소문이 당대 사회에 여러모로 영향을 주었나보다. 많은 나라에서 이 지혜를 확인하고 얻기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서 찾아온다. 그 덕에 이스라엘 솔로몬은 어마한 부를 쌓고 있다. 그리고 처치 곤란한 금으로 왕궁과 방패, 그릇 등을 만든다. 이 부가 하늘에서부터 온 지혜로 말미암은 것을 솔로몬은 알고 있을 것이다. 또 해상 무역을 통해 어마한 부를 축적하려는 시도를 하고, 더 나은 것,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신명기 17장의 율법에 따르면 왕은 자신을 위해 은과 금을 많이 모아서는 안되었고, 국마를 얻으려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솔로몬의 주변은 금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치장되어 있다. 이당시 백성들도 함께 그 부유함을 누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소유는 아니다고 하더라도 보는 것으로 누리긴 했겠지. (열왕기상4:25에 평화를 누리며 살긴 했다고 나옴)
어떠한 값으로도 그 지혜를 가질 수 없기에 이방인들은 어마한 예물을 챙겨서 온다. 이게 하나님의 지혜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10장 초반에 스바 여왕이 이 지혜의 근원을 알고 어마한 향료와 보석을 선사했었다.)
하나님을 사랑한 솔로몬은 왕이 되고 성전 건축을 하기 전 기브온으로 제사를 드리러 갈 때에 백성을 위해 공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제대로된 판결을 할 수 있길 구했고, 하나님이 지혜를 듬뿍 주셨다. 그 지혜는 부를 가져왔다. 그리고 주신 이는 잊고, 그 결과물에 흠뻑 빠져서 제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이 인간이다.
나는 얼마나 욕심쟁이인가. 얼마나 더 가지고 싶은가.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를 굳이 얼마나 더 보여주고 싶어하는가. 큐티하는 이 시간에도 강사비가 얼마 입금이 될 것인지 알리는 문자를 받고 굳이 얼마나 들어올런지 왜 생각했던 것에서 조금 줄어들었는지를 굳이 아쉬워하고 있진 않은가. 별로 집착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별 거 아닌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어이가 없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성향으로서는 굳이 오늘 같은 상황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_) 나의 벌고 쓰는 행위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진실된 감사함이 있는가? 이걸 놓치는 순간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돈이라는 것에 노예가 되어 집착하게 되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당연히 누리고 있는 줄 착각하는 순간, 머리만 굵어지고 교만이 싹을 틔우고 더 큰 부를 누리기 위해 애쓰게 된다. 주신 것에 흡족하고 만족하지 않고 누리기보다 더욱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큰 것을 원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욕심쟁이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 그의 지혜다.
나는 나에게 주신 걸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정말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곳에 알맞게 잘 사용하는 삶의 순종을 행하고 있는가? 진짜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내가 얻고자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 내게 기회주신 분은 누구신가?
학교가 너무 싫을 때, 내게 이 분깃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다시 정하였다. 그냥 다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좀 더 내게 맡겨주신 것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그곳에 세워가길 원하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게 그런 소망을 허락하셨을테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내 생각과 판단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이 가지게 하신 소망을 덮어둔 채 내가 입으로 죽이는 여럿과 동일한 삶을 살고 있진 않은가? 그 선택이 올바른가? 아니다. 물론 바꿔가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내가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또한 보여주시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것보다 나는 헐뜯기 일 수 였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내게 허락하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복음이다. 복음은 생명이다. 구원받은 기쁨을 맘껏 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반응하여 흘려보내야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두시기 위해 일찌감치 택하셨는데 어영부영하게 살고 있다. 이 복음을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준비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요 근래 많이 알려주신다. 복음 뿐 아니라 내게 허락하신 것을 함께 누릴 때 큰 기쁨이 있다는 것도 참 잘 안다. 앎에서 머무르지 말고, 내가 전하고 싶은 자를 내가 찾지 말고, 내게 허락하신 모든 자들에게 진실되이 건내는 자가 되길. 일단, 학교와 내 공동체 지체들에게라도 완벽하게 전하는 자이길.
+ 어떤 불편함을 묵인하고 용인할 때 나타나는 개인의 삶의 흐트러짐, 그리고 공동체를 놓치게 되고 하나님을 놓치게 되는 것. 마땅히 한다고, 신뢰한다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만큼이나 다른 것을 취하고 있는 태도도 많지 않을까.
어떤 순간에도 나는 흐트러짐 없이 이익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거라 확신할 수 있는가. 나또한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답시고 하나님을 놓치게 되진 않을까.
솔로몬만의 죄가 아니다. 솔로몬이 저지르고 있는, 분별하지 못하는 때에 아무도 그자리에서 분별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지혜자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무너짐에 함께 동조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집단이기주의에 함몰되는 순간 나또한 자유할 수 없음. 세상이 제시하는 가치에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 함께 몰락하게 된다. 교회는 어떤가. 개별적 공동체, 내 공동체만 추구하는 그런 모습 퓨ㅜㅜ
솔로몬이 지혜가 가득이라는 소문이 당대 사회에 여러모로 영향을 주었나보다. 많은 나라에서 이 지혜를 확인하고 얻기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서 찾아온다. 그 덕에 이스라엘 솔로몬은 어마한 부를 쌓고 있다. 그리고 처치 곤란한 금으로 왕궁과 방패, 그릇 등을 만든다. 이 부가 하늘에서부터 온 지혜로 말미암은 것을 솔로몬은 알고 있을 것이다. 또 해상 무역을 통해 어마한 부를 축적하려는 시도를 하고, 더 나은 것,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한다.
신명기 17장의 율법에 따르면 왕은 자신을 위해 은과 금을 많이 모아서는 안되었고, 국마를 얻으려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솔로몬의 주변은 금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치장되어 있다. 이당시 백성들도 함께 그 부유함을 누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소유는 아니다고 하더라도 보는 것으로 누리긴 했겠지. (열왕기상4:25에 평화를 누리며 살긴 했다고 나옴)
어떠한 값으로도 그 지혜를 가질 수 없기에 이방인들은 어마한 예물을 챙겨서 온다. 이게 하나님의 지혜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더 잘 아는 것 같다. (10장 초반에 스바 여왕이 이 지혜의 근원을 알고 어마한 향료와 보석을 선사했었다.)
하나님을 사랑한 솔로몬은 왕이 되고 성전 건축을 하기 전 기브온으로 제사를 드리러 갈 때에 백성을 위해 공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제대로된 판결을 할 수 있길 구했고, 하나님이 지혜를 듬뿍 주셨다. 그 지혜는 부를 가져왔다. 그리고 주신 이는 잊고, 그 결과물에 흠뻑 빠져서 제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이 인간이다.
나는 얼마나 욕심쟁이인가. 얼마나 더 가지고 싶은가.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를 굳이 얼마나 더 보여주고 싶어하는가. 큐티하는 이 시간에도 강사비가 얼마 입금이 될 것인지 알리는 문자를 받고 굳이 얼마나 들어올런지 왜 생각했던 것에서 조금 줄어들었는지를 굳이 아쉬워하고 있진 않은가. 별로 집착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별 거 아닌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어이가 없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성향으로서는 굳이 오늘 같은 상황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_) 나의 벌고 쓰는 행위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진실된 감사함이 있는가? 이걸 놓치는 순간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돈이라는 것에 노예가 되어 집착하게 되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당연히 누리고 있는 줄 착각하는 순간, 머리만 굵어지고 교만이 싹을 틔우고 더 큰 부를 누리기 위해 애쓰게 된다. 주신 것에 흡족하고 만족하지 않고 누리기보다 더욱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큰 것을 원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욕심쟁이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 그의 지혜다.
나는 나에게 주신 걸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정말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곳에 알맞게 잘 사용하는 삶의 순종을 행하고 있는가? 진짜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내가 얻고자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 내게 기회주신 분은 누구신가?
학교가 너무 싫을 때, 내게 이 분깃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다시 정하였다. 그냥 다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좀 더 내게 맡겨주신 것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그곳에 세워가길 원하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게 그런 소망을 허락하셨을테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내 생각과 판단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이 가지게 하신 소망을 덮어둔 채 내가 입으로 죽이는 여럿과 동일한 삶을 살고 있진 않은가? 그 선택이 올바른가? 아니다. 물론 바꿔가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내가 알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또한 보여주시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것보다 나는 헐뜯기 일 수 였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내게 허락하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복음이다. 복음은 생명이다. 구원받은 기쁨을 맘껏 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반응하여 흘려보내야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두시기 위해 일찌감치 택하셨는데 어영부영하게 살고 있다. 이 복음을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준비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요 근래 많이 알려주신다. 복음 뿐 아니라 내게 허락하신 것을 함께 누릴 때 큰 기쁨이 있다는 것도 참 잘 안다. 앎에서 머무르지 말고, 내가 전하고 싶은 자를 내가 찾지 말고, 내게 허락하신 모든 자들에게 진실되이 건내는 자가 되길. 일단, 학교와 내 공동체 지체들에게라도 완벽하게 전하는 자이길.
+ 어떤 불편함을 묵인하고 용인할 때 나타나는 개인의 삶의 흐트러짐, 그리고 공동체를 놓치게 되고 하나님을 놓치게 되는 것. 마땅히 한다고, 신뢰한다고 하고 있지만 하나님만큼이나 다른 것을 취하고 있는 태도도 많지 않을까.
어떤 순간에도 나는 흐트러짐 없이 이익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거라 확신할 수 있는가. 나또한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한답시고 하나님을 놓치게 되진 않을까.
솔로몬만의 죄가 아니다. 솔로몬이 저지르고 있는, 분별하지 못하는 때에 아무도 그자리에서 분별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지혜자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무너짐에 함께 동조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집단이기주의에 함몰되는 순간 나또한 자유할 수 없음. 세상이 제시하는 가치에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 함께 몰락하게 된다. 교회는 어떤가. 개별적 공동체, 내 공동체만 추구하는 그런 모습 퓨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