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_ 2019. 2. 21. 10:16
논쟁 후 예루살렘에서는 안디옥 교회에 잘 전달하기 위해 바울, 바나바, 유다, 실라를 안디옥으로 보낸다. 편지를 써서 몇 가지 당부의 권면을 전하고, 그들윽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전한다.
이후 전에 들렀던 곳에 방문하려고 하던 찰나에 바울과 바나바는 의견이 대립한다. 그리고 헤어진다.

안디옥의 분열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까지 나섰다. 그리고 잘 정리하여 안디옥이 혼란에서 잘 극복하도록 하였다.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빠르게 돌아설 수 있도록 한다. 마땅히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해 말하지만 정죄감을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잘하고 있는 부분은 격려해주고 더욱 굳세게 하기 위해 증인이자 위로자 격으로 유다와 실라도 함께 보낸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의견이 대립하여 크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선다. 앞선 상황들에 비해 이런 결과가 있음은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나중에 다시 만나서 담소를 나누었다는 대목도 없으니 그 단절이 꽤 크다. 그런데 왜 기록되었고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들의 함께함이 여기까지인 것은 과연 단순 의견충돌 때문이었던가, 사역의 방향이 달라서인가, 진짜 사람을 보는 눈이 다르고 성향이 달라서 힘들었던가, 그럼 지금껏 둘 다 어느정도의 희생 속에서 함께하면서 힘들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껏 왜 두신 걸까, 화해는 안하는가 등 갖가지 생각의 날개를 폈다.
진리에 대한 것으론 이견이 없지만 함께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한 해석?으로 각을 세운다. 안디옥 교회에서의 분쟁을 잘 해결해놓고 본인들은 싸워서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된다는 것... 이에 대해 하나님 나라 큐티에서는 이렇게 해석한다.

다투고 헤어진 것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정죄하지 않아야함을 강조한다. 왜그리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너덜너덜하게 아등바등하게 행동했었더가 그 상황과 그 사람들이 스쳐지나간다. 결국 맞지도 않고 너덜너덜한 채로 멀어졌다. 괜한 불편함과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마주쳐도 그냥 아는척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나에겐 마음의 짐같은..? 그런 존재로 여전히 남아있다.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분 나름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닮고자 노력하고 있으시겠지.

우리의 갖은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은 성실하게 일하신다. 넓은 품에서 긴 시간을 통째로 보시고 그 한순간 내겐 너무 힘들었던 한순간을 탓하지 않으시고 긴 역사 속에 나를 다듬어가시는 시간임을 믿는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뜬구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시간 속에 개입하시고 만지시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신뢰하고 기대하며 기다려야하지 않을까.

그분이 그상황이 떠올랐으니 기도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