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_ 2019. 2. 16. 10:03
안디옥 교회에 분란이 일어났다. 몇몇 유대인은 율법에 따른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고 가르친다. 이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가서 이 논쟁을 해결하고자 한다. 그렇게 논쟁하다가 예루살렘을 향하는 바울, 바나바, 안디옥교회 몇 명의 신도 일행은 이방인들의 회개한 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기뻐하며 도착해서는 하나님께서 행한 것을 보고하며 장로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물론 예루살렘에서도 같은 논쟁이 발발하여 구원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베드로와 야고보가 이야기한다.

1. 구원의 주체
여러차례 곱씹어 생각해봐도 그렇다 할 행위로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 그리고 나, 지금의 우리. 율법을 따지고 들면 구원받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여전히 죄인되었을 때에 어둡던 우리를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하나님께서 의인 삼아주셨다. 빛이라 칭해주셨다.
내 안에서도 여전히 편협한 사고와 태도로 그것이 기준인 마냥 누군가를 줄세우거나 내치고 있진 않은가. 내가 마땅히 그렇게 할 자격이 있는가. 없다. 그럴 수 없다.
베드로의 답변(7~11)을 보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만 주체다. 우린 다 수동적이다. 구원을 취하기 위해 어떤 능동적인 모션을 취한 것이 아니라 그냥 취함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 하셨다, 성령을 주셔서, 인정해주셨다, 깨끗하게 하시고 등등 모두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2. 율법 앞에 자유할 수 있는가
아무도 율법 앞에서 자유할 수 없다. 누구도 하나님과 대면할 자격이 없다. 나도 온전치 못한데 누가 누굴 정죄할 수 있겠는가. 율법이 구원에 대해 어떤 잣대가 되어 영혼을 실족하게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율법을 잣대삼아 지적하지 않으신다. 선택에 대한 자유를 주시고 이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가지며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도록 큰 울타리를 치시고 지켜보신다. 물론, 답도 없는 길을 헤매고 있을 때는 친히 주변을 통해 다그치시기도 위로하시기도 하시지만 우리 행동 하나하나를 참 귀하게 사랑스럽게 보신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바라볼 때 야고보가 이야기하듯(19-20) 더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관심을 가지고 부드럽게 전달해야하는 것, 믿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찐한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지적질은 노놉!

3.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역사를 바라볼 것
논쟁 속에서도 이방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모두가 함께 기뻐한다. 갑툭튀하는 상황 같으나 이 모든 흐름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라면 이 상황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결국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통해 이 논쟁은 마무리된다.
마음과 뜻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굉장히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날을 세우고 절대 굽히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참 비본질적인 것으로 왈가왈부하고 있진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같은데 말이다.
교회를 떠나고 싶은 요인들이 많다. 무수한 자극에 다양한 방법으로 반응을 선택하기도 전에 파르르 하며 으악 이게 뭐야 하는 순간의 반응이 나와 일을 그르친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반응으로 인해 나또한 상처를 깊이 받은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것을 넘어섰을 때 누리게 된 기쁨과 안정감(평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 않던가.
진리가 훼손되는 일이 아닌 것에 너무 목매지말자.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 속에 점을 지나는 나는 나무만 보고 소스라치진 않았나. 커다랗고 깊은 눈으로 포용력을 가지고 안을 수 있는 넓은 사람이 되어야지!


10-11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19-20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