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조각

수능이 준 작은 선물

사랑스러운_ 2018. 11. 17. 15:31
기분탓이겠지만(심리적이겠지만) 다행히 남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시험장이라 심적 부담은 덜했다. 제작년 여학생 시험장에서의 부담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랄까.

수능 감독은 수험생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어마한 중압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나처럼 평온한 사람도 잠을 설치고, 악몽.. 그러니 심각한 지각을 하여 혼쭐나는 꿈을 꾼다. 아침.. 아니 새벽부터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여 해가 다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선다. 그런 부담은 매우 불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수능이 치러지기 전에 한 교사의 청원으로 중노동(?^^ 슬프지만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의 현실이 알려졌지만 그냥 쑥 들어가버렸다. 후기 기사를 살펴보니 세종시의 한 학교는 키높이 의자를 마련해주셨다는 것!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일선 교사의 어려움을 잘 아시고 흔쾌히 결단하신 고사장 책임자 교장 선생님의 그 배려에 내가 다 뭉클했다. (절대 내가 받지 못한 것이라 서글펐던 것이 아니라 그냥 배려 자체에 감동)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대부분의 고사장에는 감독관 선생님들이 허리와 다리, 발을 부여잡으며 퇴실 및 퇴근하는걸 볼 수 있다. 나 역시 두 발을 디디기 힘들어서 징징대며 퇴근했다. 소수가 아닌 다수 선생님들의 이 호소는 누가 귀기울여 들어주려나. 너무 너무 힘들다. 정말.

이렇게 투덜대려고 시작한 글은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수능 감독 2년차의 투덜거림일 뿐이지만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좋겠다.
여튼, 이번 수능 감독을 하면서 내가 얻게 된 아주 작은 선물! 생각이 이래저래 맞물리면서 기억할 것을 남긴다.

#1. 오랜 친구와의 만남
2005년 11월,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후 2개월? 3개월 정도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그전에는 오며가며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부쩍 친해져서 그저 사람을 신뢰하고 좋아했던 십대와 이십대의 언저리에 있던 나는 나눌 수 있는 많은 것을 함께 나누는 사이까지 되었다. 공공연하게는 비밀이었던 연애사, 재수와 정시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하던 시간을 보내며 속마음도 솔찮게 나누는 등 즐겁게 놀고 놀았던 시간이었다.
반짝 그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다른 지역으로 헤어지고 입대하고 공부하고 떨어져 지내며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고, 그냥 그 기억만 간직할 뿐인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결혼을 했다. 결혼식도 안갔다. 아니 안갔다기보다 청첩장을 못받았.. 줄 수 없었? 뭐 암튼 그런)
수능 전 날, 감독관 회의가 있어서 해당 고사장으로 갔다. 허둥지둥 대면서 들어가서 종알종알대며 있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 친구였다. 놀랍고 반가웠다. 그 때 그 시간을 가장 많이 공유했던 친구를 만나는 것은 실로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니 그것보다 그냥 그 친구의 존재가 반가웠겠지.
긴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인사하고 간단히 예의 상 안부만 묻고 헤어졌다. 수능 당일, 아쉬워서 점심 시간에 복도에서 잠깐의 이야기를 나눌 때도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3교시 감독을 함께 들어가기 전까진 크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3교시 정, 부감독에 나란히 함께 들어가면서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의 지난 시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랬었지, 우리가 이 때 수능을 치르고 서로를 알게 되었지, 시간이 오래 지나고 이렇게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신기하네, 만나서 나누면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갈텐데 그래도 만나면 재미있겠다, 나머지 그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삼십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등 생각지도 않았던 직업군에 속해 있으면서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의 만남은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곧, 넷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기길.

#2. 오랜 제자와의 만남
6년 차다. 이제 곧 7년 차가 되겠지. 1년만 하고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한 것이 무색하게도 오래 했다. 그러다보니 성인이 된 제자도 생겼고, 이렇게 수능장에서도 만나게 되는 제자가 있게 되었다. (제작년 첫 감독에서는 없었다. 아마도 1년차에 만난 중3친구 중 여학생이 10명 정도되었나? 그래서 그렇겠지)
1교시, 3교시에 두 아이를 만났다. (사실 더 있는데 기억이 없다._.) 1교시에 만난 아이는 1년 차에 만난 아이로 갓 중학교 입학한 친구, 2교시에 만난 아이는 2년 차에 만난 중2병을 앓는 친구였다.
1교시에는 밝게 인사를 하는데 사실 몰라봤다. 정말 이름을 보기 전까진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이름을 보고도 얼굴이 저렇게 생겼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억 곳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냥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 아기아기했던 모습에서 청소년의 막바지를 살아내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그래도 해맑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밝게 인사를 하는데 사실 몰라봤다. 정말 이름을 보기 전까진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이름을 보고도 얼굴이 저렇게 생겼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억 곳에서 찾기가 힘들었다. 그냥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 아기아기했던 모습에서 청소년의 막바지를 살아내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그래도 해맑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3교시에 만난 친구는 그 친구의 학교 생활이 몽글몽글하게 기억이 났다. 그저 장난치고 장난치고 또 장난치던 중2중2하는 친구였다.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여전한 그 친구는 바짝 마른 길다란 체구에 여전히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눈빛 교환 만으로도 재미있는 친구였다.
처음엔 그냥 신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친구는 삭막한 시험장에서 아는 얼굴의 선생님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막 뿌듯하고 그랬다. (사실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그냥 내 만족이라 해도 괜찮다. 내가 안정감이 생겼으니.)
나이가 들어 나는 그 아이들의 변한 얼굴을 모를지라도 아이들은 나이 든 선생님을 기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밝게 맞이해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두 상황 다 나의 그 시간을 회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나의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여느 일기보다 더 소중한 것 같다. 내 시간을 다시 선물 받은 느낌이다. 좋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수능을 다 치르고 전화할 선생님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것도 참 감사했다. 발이 너무 아프다 엉엉 하면서 9시간 잠자던 폰을 깨우고 밀려오는 회신 처리 건을 정리하며 퇴근하던 길에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내가 먼저 전화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늘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는 따뜻한 그 친구의 인생이 정말 아름답게 꽃피우길 간절히 기도할 뿐. (이 친구는 내가 1년만 하고 그만 둬야지 라고 생각한 이 직업군에서 6년을 하도록 한 장본인)



+ 덧.
1교시, 3교시, 4교시 감독을 수행하면서 문제지를 나눠주는 제2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부정 방지를 위한 자필 확인용 필적문구를 보지 못했다. 1감독이 아니라 아이들 답안지에 인장을 찍을 일이 없어서 더욱이 확인하지 못했다.
4교시에 세 차례에 걸쳐 시험지를 회수하면서 드디어 그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래,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나는 아이들을 참 사랑스러워하는 사람인데 요즘 그렇지 않았다. 진짜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넘어서 미웠다. 그래서 이 직업을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정말 진심으로.
다시 마음을 다스려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눈을 장착하여 남은 학기를 마무리 할 수 있길. 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교사 7년 차는 없다. 정말. 

아래는 필적문구 문장이 있는 시이다.
편지 _ 김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