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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심겨진 꽃
거친 공허함과 차디찬 마음, 하늘을 향한 몸부림이 현저히 줄어들어 생동감을 잃은채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전하는 생의 소중함. 그리고 분명하게 할 정체성을 담은 오묘하거나 혹은 아주 조금 사랑스러운, 안아주고 싶은 김진영의 애도 일기. 절대 후루룩 읽을 수 없는 책. 여운이 좀 많이 긴 책. 궁금한 저자의 인생. 여러차례 다시 보기를 위해 손이 가장 잘 닿는 칸에 무심하지만 정갈하게 꽂혀질 책. p.125 105.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그래, 사랑의 대상이 포기가 되고 소망이 사라질 때 나는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지금 나는 그런가보다. 그렇다. 다시..
앉은뱅이의 치유에 대한 궁금증으로 모인 자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던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 선전과 대제사장이나 지도자가 아님에도 가르친다는 죄목으로 공의회의 중심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그자리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며 복음을 선포한다. 이미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민심으로 인해 풀려나면서도 진리를 분명하게 선포하며 타협에 동의하지 않는다. 풀려난 후, 동료들과 뜨겁게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말할 수 있길 간절히 구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예수님의 공생애, 십자가에서 죽으심, 부활을 통해 보고 들은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이 분리된다. 같은..
제구시에 기도하러 올라간던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난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하고 그 앉은뱅이는 일어나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간다. 이후 그 표적에 대해 사람들이 띠용 해있을 때, 결과보다 그 모든 과정 속에 계신 하나님을 선포한다.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복음)를 분명하게 전한다. 세 가지를 생각했다. 1. 앉은뱅이를 성전 미문에 앉혀 놓은 자 vs. 앉은뱅이와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자 앉은뱅이를 분명 그곳에 둔 자들이 있다. (2절) 왜 여기까지만 두고 간 것일까. 성전 안에 들어갈 자격을 둔 거 겠지. 그 내면에는 나와 다름, 혹은 그것으로 인한 우월성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요일이라는 시 큐레이션 어플이 있다. 처음 그 어플이 나오고 오호라 이런 게 나왔어야지 하면서 하루 하나씩 띄워주는 시를 읽었던 시간이 있다. (지금은 좋은 습관이 아니라 지나는 일상이 되어버려 그냥 넘기길래 없애버렸다. 그리고 시는 모름지기 후다닥이 아닌 점잖게, 여유롭게 굳이 낭.독.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라 판단하여 없앰) 시를 엮은 작가는 쉼없이 살고 있는 얼굴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로 처방약을 제공한다. 어쩜 그리 다른 고민,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로 위로하고 응원한다. 그렇게 슬픔을 훔친단다. 하하. 그렇게 되지 않을테지만 발상이 얼마나 따뜻하고 영특한가. 조금 아쉬운 것은 더 적절한 시가 많을텐데 굳이 이 시..
| 민음사 출판그룹 첫 번째 독자 (1월) : 민음북클럽 서평 프로그램 아래 링크 클릭! 민음북클럽 첫번째 독자 시끄럽고 시끄럽고 귀가 쉴 시간과 틈이 없고, 말이 많고 또 많아 입도 쉴 틈이 없는 이 시대에 침묵이 너무나 고픈 나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책은 《자기만의 침묵 - 엘링 카게》
2019년 새해 첫 도서 리딩. 구마몬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적어도 나에게 다방면으로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어떤 책일까 고심하며 펼쳤고, 읽어내려가면서 구마모토현을 여러차례 검색했다. 규슈지역의 작은 동네, 구마모토현에서 등장한 핫 마스코트 구마몬은 몸집보다 더욱 더 큰 무언가를 이끌어낸 장본인이었다. 인터넷 서핑으로 찾아본 구마모토의 도시 구석구석에 구마몬이 안보이는 곳은 적어도 내 눈에는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구마몬의 힘이 아니겠는가!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캐릭터가 마스코트 왕국 일본에서 전국 최고의 영예를 누릴 수 있게 된 연유를 요목조목 잘 정돈한 것은 둘채 치고 색다른 방법으로 전한다. 그래서 그럴싸한 내용에 가독성을 높여준다. 이또한 구마몬의 힘이 아니겠는가! 작은 도시를 전달하는 마스..
나는 왜 교사인가 (부제: 윤지형의 교사 탐구) 2013년에 읽은 책이니 꽤 오래 되었다. 독서다이어리 어플에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독서노트를 옮긴다. 그 시간 속의 나의 심정과 마음 상태가 드러난다. 우습다. 대견하기도 하고, 그 열정이 그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여전함에 씁쓸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그대로 옮긴다. 치열하게 시대를 거스르는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내딛는 13명의 교사, 아니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있어 여전히 학교가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인공호흡기를 장착 해야만 할 학교의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이들이 있기에 쉽게 숨을 거두진 않을 거라 생각된다. 물론 인공호흡기를 강제로 떼게 할 어둠의 세력들이 있겠지만... 내가 과연 그 길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강제적인 주입식 교육에 대한 억울함? 아쉬움? 이런 기분(딱히, 이성적이지 않는 사고로 생각하였기에 감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제서야 안다.)으로 일관되게 교육을 부정했다. (그래도 그 교육을 통해 나는 지금의 자리에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것이겠지..) 여튼 그런 교육을 받아왔기에 대학 때 교육학을 이수하며 존 듀이나 루소는 획기적인 교육방법이 아닐 수 없었고 좋다좋다를 연발할 뿐이었다. 센세이션!! 이걸 왜 이렇게 교육의 장에 쓰지 않은 나의 옛 선생님들이 무능력한 선생으로 보였고,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혹은 그렇기에 나는 학교라는 말뿐인 집단에 속해 있고 싶지 않았다. 무지 비인간적이라 생각하였고,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착각하며 그들을 무시했다...
7-8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시험받던 날에 반역한 것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10 그들은 언제나 마음이 미혹되어서 내 길을 알지 못하였다. 12-14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여러분은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18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습니까?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위기 앞..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인 인간실격을 참 불편하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냥 뭔가 깨림칙하고 불편했다. 집어들기엔 불편함이 가득했으나 '첫번째독자'의 책임과 의무로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처음 펼 때 늘 목차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그렇다보니 책날개에 나온 다자이오사무에 대한 짧막한 설명에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생기게 되면서 궁금해져서 자연스레 작가연보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게 되었다. 작가연보를 펼지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어둡고 우울하고 축 가라앉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서 중도에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드러나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치 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녹아든 에세이, 수필의 한 부류와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