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겨진 꽃

사양 - 다자이오사무 본문

길 위에서/책과 마주하다

사양 - 다자이오사무

사랑스러운_ 2018. 10. 15. 18:14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인 인간실격을 참 불편하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냥 뭔가 깨림칙하고 불편했다. 집어들기엔 불편함이 가득했으나 '첫번째독자'의 책임과 의무로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처음 펼 때 늘 목차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그렇다보니 책날개에 나온 다자이오사무에 대한 짧막한 설명에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생기게 되면서 궁금해져서 자연스레 작가연보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게 되었다.
작가연보를 펼지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어둡고 우울하고 축 가라앉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서 중도에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드러나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치 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녹아든 에세이, 수필의 한 부류와도 같이 느껴졌다. 그의 안쓰러운 삶이 그대로 가즈코와 나오지, 그리고 이 남매의 어머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었다.

고고한 귀족의 삶이 끝날 때에도 그 고고함이 남아있었던 어머니와 귀족의 삶이 싫어서 방황하던 두 남매의 삶, 그리고 죽음은 많이 달랐다. 그리고 서로를 용납하는 태도도 달랐다. 성향의 차이라 할 수 없으나 어머니는 위기 속에서도 잠잠하셨고, 남매는 달랐다. 위기에 있는 남매의 삶이 안쓰러워서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생각이 고이고이 책의 마지막을 넘기면서까지 간직하며 숨조리며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나오지의 마지막, 결국엔 귀족이라는 정체성의 변화가 없었다. 그것이 싫어서 거부하며 삶은 낭떠러지까지 갔는데 정돈되고 정리되지 않은 채,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리고 우에하라의 사랑 또한 나오지와 다를 바가 없다. 그 다를 바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지만, 결국 그 사랑을 끝낸다. 여전히 귀족이다. 변치 않고 귀족이다.

단순히 신분이 나뉜 것에 대한 이슈몰이가 된 소설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이 패전 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양족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계급과 신분이 철저히 나눠진 시대를 향한 청년들의 몸부림이 있었으리라.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도 이와 마찬가지 아닌가.
그 치열한 몸부림이 나를 바스락 부러뜨린다해도 그 길을 갈텐가, 아니면 적당하게 조절할 것인가. 포시럽게? 자란 나로서는 후자에 속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른 방법을 찿아보련다. 이렇게 파괴적인 방법은 나와 맞지 않다. 저돌적이지만 선량한, 누구에게나 자극적이지 않으나 본질을 꿰뚫는 그런 방법.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청년의 담대함과 용기, 열정은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의 방법은 최선이 아니다. 치열한 몸부림을 얼마든지 달리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으나 다자이 오사무는 사건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감정 하나하나에도 공을 즐이고 집중한다. 안쓰럽게 보이는 것은 이 감정과 사건을 다 삭히는 것만 같아서, 해결이 아니라 꾹꾹 눌러담고 삭히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 다자이 오사무의 삶도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려온다.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만나고 관계 맺는 다양한 인물 속에도 너무나 많은 수가 이렇게 감정 소모를 하며 사건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소설의 가즈코와 나오지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내 주변을 더욱 면밀하게 살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 음침하고 어두운 소설을 읽으면서 생기게 되었다니 기묘할 따름이다.

또 하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359번을 차지하는) 이 책에서는 해설이 잘 되어 있다. 특히나 소설을 읽으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과 그림까지도 더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직접 살펴보진 않았으나) 다양한 도서를 섭렵하여 써내려간 소설이기에 다자이 오사무의 명석함과 그의 삶이 더 아깝게 다가온다. 옆에 따스한 말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그랬다면 이런 역작은 나오지 않았으려나? 아니, 이 작가를 연구하며 많은 사람들이 더 따스함을 안고 희망을 얻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28 보통 병이 아니야. 신께서 나를 한번 죽게 하시고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나를 만들어 다시 태어나게 하셨어.
29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정말로 한 번 죽어서 예전의 우리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결국 인간에겐 불가능한 게 아닐까? 어머니는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여전히 수프를 한 술 드시고는 나오지 생각에 아! 외치신다. 그리고 내 과거의 상처도 사실 전혀 낫지 않았다.
35 별일 아니야. 어차피 장작은 불태우기 위한 거니까.
52 가즈코의 그 비밀이 좋은 결실을 맺어 준다면 좋을 텐데. 엄마는 매일 아침, 아버
지께 가즈코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단다.
65 1000엔 빚을 갚으려 겨우 5엔. 현실 속 내 실력이란 얼추 이 정도.웃을 일이 아니다.
74 이젠 틀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드레스 옷감을 잘못 재단했을 때처럼 더 이상 그 옷감은 꿰매어 붙일 수도 없어, 전부 내버리고 다시 새 옷감으로 마름질해야 한다.
97 나는 부끄럽다기보다도 이 세상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마치 기묘한 생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02 나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곧 내 육체도 함께 소실되고 마는 느낌이라,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9 무엇이건 그들이 말하는 것과 반대쪽에 진정한 살 길이 있는 것 같았고, 혁명도 사랑도 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달콤한 일이며, 너누 좋은 것이다 보니 심술궂은 어른들이 우리에게 포도가 시다며 거짓을 가르친 게 틀림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160 누나, 나는 귀족입니다.


본 서평은 민음사의 따스한 손길에 의해 도서를 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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